[시론]이필상/증권사 빅뱅 막올랐다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수수료 인하 무한경쟁 돌입▼

증권업계에 수수료 인하 혁명으로 지진이 일고 있다. e*미래에셋증권은 위탁수수료를 0.5%에서 0.29%로, 사이버거래 수수료를 0.1%에서 0.029%로 전격 인하했다. 이것이 도화선이 돼 증권회사들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 진입했다. 최근 사이버거래 비중이 폭증하고 인터넷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수수료 인하와 기존 증권사들의 빅뱅은 불가피한 일로 예상됐다.

수수료 수입이 전체 수입의 70%나 차지하는 증권회사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급격한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더구나 일부 증권사는 수수료 제로 전략까지 내놓아 증권사들의 죽이기 전쟁은 이미 선을 넘어선 상태이다. 현 상태로 보아 서비스 차별화에 성공한 회사, 조직이 유연하고 의사결정이 신속한 회사, 사이버 거래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회사 등을 빼놓고는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긴박한 위기상황에 처해 당사자인 증권회사들은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다. 또 증권주 투자자들은 뜻하지 않은 손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의 시장운영과 영업행태로 보아 증권업계의 구조변혁은 필연적인 요구이다. 증권회사는 경제심장이라고 하는 자본시장의 운영 주체로서 증권가격과 기업가치의 올바른 평가, 기업의 투자결과와 자본조달 그리고 투자가들의 공평한 재산증식 등 시장기능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극대화시키는 것이 사명이다. 증권회사들은 과연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물론 증권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안간힘을 기울여 기업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경제위기 극복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투자가들의 재산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축적해오며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면에서 볼 때 현행 영업구조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증권회사들은 약정고를 높이는 것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약정고에 따라 수수료가 결정되고 그것이 바로 증권회사 이익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약정고를 올리기 위해 실적이 부실하면 퇴사를 강요하고 실적을 올리면 성과급을 주어 증권회사 직원들로 하여금 약정고에 목을 걸게 했다. 이러한 무한경쟁에서 성공하는 돌파구는 초단기 매매, 즉 하루에도 고객의 계좌에서 몇번씩 회전 매매하는 것이다. 종목 선정과 매매 시점 포착이 어려워 고객들이 믿고 맡겨놓은 통장과 도장을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약정고를 올리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당연히 일반 투자가들은 손실을 보고 그 손실이 증권회사 이익으로 이전된다.

일부 증권회사 직원들은 관리계좌 금액에 비해 약정금액이 100배가 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회전매매의 대가로 한달 평균 2억원 이상 성과급을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은 비리구조를 일찍 뜯어고치고 투자가들을 보호하면서 증권시장을 정상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차별-전문화로 살길 찾아야▼

이번에 시작된 증권업계의 빅뱅은 이미 엎질러진 물로 대국적 견지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수료 인하를 근간으로 하는 증권시장의 빅뱅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미국은 1975년에 180년간이나 지속됐던 고정수수료 제도를 자율화했다. 그 결과 대형 증권회사가 8개나 쓰러지는 등 처절한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이후 증권업계는 업무 다각화와 전문화 등을 통해 적자생존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1986년에 수수료 빅뱅을 단행한 영국에서도 증권회사의 소유주가 완전히 바뀌는 등 상상불허의 변혁이 진행되었다.

이번 수수료 빅뱅은 e*미래에셋이 증권업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습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증권업계의 구조개혁은 언젠가 정부 아니면 자율에 의해 시작돼야 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런 견지에서 증권회사들은 고통과 혼란은 크지만 수수료 파괴를 현실로 인정하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대응일 것이다. 업무의 차별화와 전문화로 생존의 길을 찾는 것은 물론 인수합병,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사업, 신상품 도입 등 새로운 성장 전략을 구사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필상(고려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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