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뜬다]불붙은 기업 인수합병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유럽을 인수합병(M&A) 태풍이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이뤄진 세계 10대 인수합병 중 7건이 유럽 기업에 의해 시도됐다.

톰슨 파이낸셜 시큐리티 데이터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체의 인수합병 규모는 3조4400억달러. 이중 35%인 1조 2100억달러가 유럽에서 이뤄졌다. 이는 98년에 비해 64% 증가한 것이며 90년 이후 9년간 유럽에서 성사된 M&A의 40% 규모. 미국의 경우 지난해 M&A총액은 1조7000억달러로 98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세계에서 이뤄진 100억달러가 넘는 대형 M&A중 21건이 유럽 무대에서 이뤄졌다. 유럽의 인수합병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99년 1조2100억달러 성사▼

지난해 5월 21일 이탈리아 통신업체 올리베티가 몸집이 6배나 큰 텔레콤이탈리아(TI)를 인수했다. 올리베티의 연간 매출액이 39억6000만달러인데 비해 TI는 252억4000만달러로 6.4배. 그러나 급성장하고 있는 정보산업의 기세를 당하지 못한 것이다. 인수금액은 TI의 지분 51.02%에 해당하는 640억달러. TI는 경영권을 방어하려 도이체텔레콤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외국계 회사에 정부지분을 넘기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 경영권을 넘기고 말았다.

▼'닭'이 '소'를 삼킨 사례도▼

프랑스 국립파리은행(BNP)은 적대적 M&A를 통해 자산규모 1조달러의 세계최대의 은행이 되고자 했으나 무산됐다. BNP는 소시에테제네랄(SG)과 파리바은행의 우호적 합병 추진과정에 뛰어들어 두 은행을 대상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했다. 그러나 SG직원들의 반발과 인수자금사정으로 SG의 지분을 36.8%밖에 확보하지 못해 파리바은행을 인수하는데 그친 것.

이밖에도 벨기에-프랑스 회사인 토탈피나의 프랑스 석유회사 엘프아키텐 인수, 영국의 내셔널 웨스트민스터은행을 놓고 스코틀랜드왕립은행과 스코틀랜드은행이 각기 인수전쟁을 벌였다.

ABN암로금융의 휴 스코트 배러트사장은 “유로화 출범에 따른 자본시장 활성화로 미국이 독점해온 M&A시장이 유럽으로 옮겨졌다”며 “유럽은 올해 세계 최대의 M&A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언론매체들은 “야만인들이 문 앞에 도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에 의존하는 미국식 적대적 M&A가 보수적이었던 유럽의 기업문화를 확 바꿔놓고 있다. 소송, ‘적과의 동침’은 물론 국경을 넘은 영토전도 불사하게 만들었다.

▼국경넘어 적과의 동침까지▼

영국 보다폰그룹은 지난해 1월 미국의 벨애틀랜틱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업체인 미국 에어터치를 인수했다. 벨이 제시한 가격보다 170억달러 많은 620억달러를 써내 에어터치를 가로채 세계최대의 이동통신업체가 된 보다폰 에어터치는 독일의 만네스만까지 인수했다. 미국의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주주의 이익과 기업 효율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파업을 일삼는 유럽의 노동조합과 보조금에 중독된 농민, 세금걷기만 좋아하는 정치인들의 잠을 깨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보다폰, 만네스만 합병까지◇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업체인 영국의 보다폰 에어터치사가 독일 최대의 통신업체 만네스만을 인수합병하기까지 과정은 사상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협상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합병규모는 1800억달러. 아메리카온라인(AOL)의 타임워너 인수 규모인 1548억달러를 넘는 사상 최대 규모. 합병으로 보다폰 에어터치사는 세계 이동전화 사용자의 10%인 420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으며 유럽과 극동을 연결하는 이동통신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보다폰이 만네스만에 우호적 인수안을 제시한 것이 지난해 11월 14일. 유무선 종합통신회사로 유럽시장을 석권하려던 만네스만의 클라우스 회장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1차 제의(1070억달러)와 2차 제의 (1250억달러)가 모두 거절되자 보다폰은 지난해 12월말 적대적 인수로 방향을 전환, 1340억달러의 금액을 제시했다. 최후통첩이었다.

만네스만은 비방광고와 주주들에 대한 호소를 통해 경영권을 사수하려 했다. 이후 양측은 세계 유수의 통신업체를 끌어들어 ‘통신업계 세계대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세는 프랑스의 비벤디가 만네스만 대신 보다폰과 손을 잡으면서 기울었다. 크리스 젠트 보다폰 에어터치회장이 2일 밤 독일 뒤셀도르프의 만네스만 본사를 방문하면서 협상은 종막으로 향했다. 7일 양사의 합병 발표로 보다폰 에어터치사가 3개월에 걸쳐 펼친 인수합병작전은 성공리에 끝났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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