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선거용 개각인가

  • 입력 2000년 2월 12일 20시 07분


개각을 한 지 한달 만에 또 정보통신부장관과 노동부장관을 총선에 내보내기 위한 국무위원 개편을 했다. 지난번 1·13개각 역시 당시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의 총선 출마, 그에 필요한 공직 사퇴와 ‘교통정리’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렇다면 한 달이 멀다하고 잇달아 ‘총선용’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는 데 대해 ‘정작 중요한 행정은 어떻게 돌아가나?’하는 걱정이 당연히 일게 된다.

현대 행정은 그야말로 분화(分化) 특화(特化)되고 복잡다기해져서 최소한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얼치기’장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다.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여 업무를 파악하고, 상당기간 경험을 쌓고 연구하지 않으면 소관 분야의 업무를 지휘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한달 전에 여러 장관을 바꾸고는, 다시 총선 같은 정치일정을 이유로, ‘당선될 만 한 장관이니 지역에서 출마하라’는 임기응변식의 교체는 국무위원의 비중으로 보나, 개각이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나 결코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개각에도 나름의 원칙과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장관이 소관 행정의 지휘를 그르치고, 업무를 둘러싼 물의를 빚을 경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바로 그것이 책임행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정권 가릴 것 없이 지나치게 잦은 개각으로 ‘축적없는 행정’과 업무의 단절을 초래해왔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른바 ‘민심수습 개각’이라는 이름으로 기용된 지 얼마 안되고, 겨우 업무가 손에 잡힐 만한 장관들이 무더기로 그만두는 개각은 이 나라만의 특징이 아닌가. 정권교체에 따른 개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쇄신’개각 ‘지방선거용’개각 ‘총선용’개각 하는 식으로 장관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결국 국력 손실을 부르고 장관감 인재를 일회용품처럼, 혹은 파리 목숨처럼 소진(消盡)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남궁석(南宮晳)정통부장관과 이상룡(李相龍)노동부장관을 선거전에 내보내는 정부 여당으로서는 ‘안정의석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인 듯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각과 국정을 ‘선거’ ‘정치’의 후순위로 여기는 분위기는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비록 정권측으로서는 국회내의 안정의석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국정운용의 관건’이라고 확신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행정의 일관성 전문성 안정성을 도외시한 이런 개각은 대통령이 정파적 이익을 위해 개각권한을 남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선거는 지나가는 것이고 정치의 몫에 그치지만, 국정 행정은 영속하는 것이며 ‘민생의 몫’이라는 점을 국민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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