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거창 보건소 청소부 이순식씨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청소부 이순식씨(48·여·경남거창군)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전화를 걸었을 때 “나같은 사람이 신문에 날 이유가 없다”며 인터뷰를 강하게 거절했다. 몇차례 전화를 걸고 거창에 내려가서야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직장은 거창군 보건소. 청소와 빨래 일을 하고 있다.

▼ 노점상등 궂은 일 다해봐 ▼

이씨 삶은 고단했다. 1952년 전북 군산출생. 아홉 살때 어머니를 잃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목수였던 아버지는 ‘여자가 배워야 소용없다’고 등록금을 주지 않았다. 가출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도 모르고 올라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부산. 파출소에 붙잡혀 6개월간 경리일을 도왔다. 이후 이씨의 청춘시절은 우리네 가난했던 시대 ‘딸’들이 거쳤던 그대로다.

스물여섯 되던 해,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고아나 마찬가지였던 두사람은 냉수 한그릇 떠놓고 식을 올렸다. 남편역시 못 배우고 가난했다. 무주에서 머슴을 살다 동네사람 소개로 국수공장으로 옮기면서 거창생활을 시작했다. 공장 기계에 남편의 팔만 잃지 않았어도 이씨의 삶은 좀 나았을지 모른다.

갑자기 장애를 맞은 남편은 의욕을 잃었고 술로 지샜다. 이씨가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젖먹이들을 안고 노점상 행상 등 안해 본 일이 없었다.

그즈음 남편을 치료했던 병원에서 이씨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의사가 거창에서 제법 큰 개인병원 청소부로 이씨를 추천했다. 비로소 출퇴근하는 직장을 얻은 이씨는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 나보다 불쌍한 사람 더 많아 ▼

세상에 대한 시선이 따뜻함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병원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나보다 불쌍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병원에서 배웠어요.”

돈이 없어 병 못 고치는 아이를 속절없이 보내야 하는 부모, 혼자 죽어가는 노인들….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죽어가는 부모를 앞에 두고 유산 때문에 싸우는 자식들도 많이 보았다. 병원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이씨는 결국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을 뼈속깊이 체험했다.

그렇게 10년을 병원에서 일하고 90년 보건소로 옮겼다. 월급 45만원의 박봉이지만 시간이 많아 이것 저것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무의탁노인들 위해 봉사 ▼

그 중에서 가장 큰 일은 무의탁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돕는 일. 일이 힘들어도 짬날 때마다 노인들 빨래도 하고 밥도 해드린다. 부모처럼 모시는 분이 6명이나 된다.

“남을 돕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예요. 그동안 사람들한테 진 빚을 갚는 거지요”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나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으리라’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한때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도우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평생 남한테 고맙다는 말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 내가 남에게 고마운 존재가 됐다고 생각하니 살맛이 나요.”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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