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새영화]알모도바르 감독 '내 어머니의 모든것'

  • 입력 2000년 1월 27일 19시 14분


‘스페인의 악동’으로 불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별난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서 여장남자나 동성애자, 정신이 나간 듯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란 거의 없다. 점잖은 취향의 관객이면 끔찍할만큼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유머는 괴상망칙하고 공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알모도바르(49)는 쉰 고개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발 담가온 기괴한 욕망의 진창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낼 줄 아는 혜안의 소유자로 변신한 것일까.

그의 새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한 사람들의 기이한 인연을 다뤘지만 묘한 감동을 전해주는 멜로 영화다. 또한 가장 희극적인 순간에서조차 슬픔이 배어나오는 희비극이기도 하다. 영화 ‘이브의 모든 것’과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극 중 소재와 이야기 전개의 복선으로 정교하게 사용했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해도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영화의 매력.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간호사 마뉴엘라(세실리아 로스 분)는 아들의 죽음을 전 남편에게 알리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간다. 그곳에서 마뉴엘라는 아들이 죽게 된 계기를 제공한 배우 위마(마리사 파레데스), 여장남자 매춘부 아그라도(안토니아 산 쥬앙), 에이즈에 감염된 채 임신한 젊은 수녀 로사(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난다. 더구나 로사를 임신시킨 남자는 마뉴엘라의 전 남편인 여장남자 롤라(토니 칸토)였다.

우연의 남발이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야기를 엮는데 장인의 경지에 오른 알모도바르의 솜씨 덕택에 각각의 캐릭터들은 현실성을 잃지 않는다.

죽어가는 한 남자의 아이를 낳았거나 임신한 마뉴엘라와 로사의 불행은 이들의 삶 속에서 순환되면서 희망으로 변해간다.

로사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기적적으로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고, 영화의 마지막은 이들의 미래가 여전히 힘들겠지만 이전보다 밝을 것임을 암시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상처입은 사람들을 감싸안으며 자신의 고통을 다스려나가는 모성을 찬양한 영화다.

그의 영화에 늘 나오는 유치찬란한 총천연색 세트는 이 영화에서 제 자리를 찾았다.

누구 하나 처지지 않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도 좋다. 알모도바르는 이 영화로 1999년 칸 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했고, 최근 미국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타기도 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1999년 10대 영화’ 중 1위. 18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알모도바르 감독은 누구▼

51년 스페인 칼자다 드 칼라트라바 출생. 70년 극단 ‘로스 골리아도’에 들어가 웃겨주는 대사를 썼고 가공의 포르노 스타 패티 드푸사란 필명으로 익살스런 추억담을 써서 책으로 펴내고 록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74년 단편영화 ‘필름 폴리티코’로 연출을 시작. 88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로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장단편을 포함해 26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1편을 제외한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마돈나:진실 혹은 대담’에는 배우로도 출연했으며, ‘욕망의 낮과 밤’에서는 음악까지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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