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음모론' 실체 밝혀야 한다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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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있었던 인천 남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이 지역에 사는 충청출신 유권자들의 65%가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여당인 민주당측의 출구여론조사 결과인데 충청표가 이렇듯 야당 쪽에 몰린 데에는 이른바 ‘음모론’이 상당히 먹혀 들어간 것 같다는 게 민주당측 분석이다. 고작 18.5%의 투표율을 보인 ‘작은 선거’의 결과로 전체 유권자나 특정지역 민심의 흐름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음모론’의 진위를 떠나 그것이 투표행위에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유권자의 힘으로 ‘썩은 정치’를 바꿔보자는 것이 오히려 특정지역의 지역감정을 악화시키고 그것이 투표행위로 이어진다면 이는 당혹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민주당측의 ‘JP와 자민련 죽이기’라는 ‘음모론’ 자체가 이렇듯 힘을 받게 된 데는 무엇보다 청와대와 민주당측의 사려 깊지 못한 대응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비록 관계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시민단체의 실정법 위반을 공개적으로 ‘고무 찬양’했다. 민주당측도 대통령의 말을 거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자 명단 발표 결과는 그 이유야 어떻든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공동여당인 자민련은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를 비롯, 부총재단과 사무총장 등 소속의원의 30.2%가 명단에 올라 쑥대밭이 되다시피했다. 치명상을 입은 자민련은 반격의 칼로 ‘음모론’을 내세웠고, 그것이 그간의 정황에 미루어 일부 그럴듯하다는 ‘심증’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제를 심증이나 개연성만으로 끌어가서는 안 된다. 자민련측은 ‘음모론’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아니면 총선시민연대측과 공개토론이라도 벌여 ‘음모론’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음모론’을 이용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표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청산돼야 할 3김식 구태정치의 전형이다.

우리의 정치풍토를 보다 건강하게 하려면 이런 음모론 같은 것은 햇볕에 드러내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청와대와 민주당측도 ‘음모론’이 자민련의 총선전략이고, 그것이 공동여당의 의석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괜찮지 않으냐는 ‘계산’이 아니라면 “음모론이란 있지도, 있을 수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음모론의 실체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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