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판교 개발 여부 놓고 뜨거운 논란

  • 입력 2000년 1월 19일 20시 13분


수도권 남쪽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일대의 개발여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94년부터 신도시 개발론(현지 주민, 성남시)과 반대론(정부)이 팽팽히 맞서온 상황에서 신임 김윤기(金允起)건설교통부장관이 최근 판교 개발을 허용할 뜻을 밝힌 뒤 판교 현지는 개발 기대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김장관의 개발 허용 방침에 대해 인근 분당신도시 주민과 환경 시민단체, 도시전문가들은 ‘수도권 남부의 마지막 허파’기능을 해온 판교의 녹지마저 아파트촌으로 변할 경우 인구집중과 교통난 등 삶의 질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지 분위기▼

경부고속도로 판교인터체인지에서 용인시 쪽으로 가다 보면 부동산업소 간판이 즐비한 골목이 눈에 띈다. 바로 판교신도시 개발 예정지에 포함된 곳이다. 골목을 지나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오른쪽 산자락 아래에 논밭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19일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신도시 개발 소식에 들뜬 모습이었다.

판교동에서 부동산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이윤표(李潤杓)씨는 “개발 예정지보다 그 주변인 대장동 석운동 등의 땅중에서 건축허가가 가능한 땅을 묻는 전화가 많다”면서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 땅값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교인터체인지 근처 백현동 일대도 신도시 예정지. 비닐하우스가 빼곡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탄천 건너편에 있는 분당의 아파트숲과는 대조적인 분위기. 이곳 주민들도 건교부장관의 개발허용 시사 발언에 들뜬 분위기였다.

주민 정창영(丁昌榮·70)씨는 “조상 대대로 500년째 살고 있는데 이 일대가 녹지로 묶인 뒤 지붕 개량 공사도 못하고 있다”며 “매일 아침 탄천 건너편의 값비싼 아파트촌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은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로 매물이 자취를 감추는 등 땅값 상승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판교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분당신도시 주민들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분당신도시 주민 김영준씨(37)는 “도대체 수도권의 녹지나 평지는 조금도 남겨놓지 않고 다 아파트촌으로 만들 셈이냐”며 “판교에 신도시가 들어서면 그야말로 출퇴근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개발되나▼

판교는 용인시의 수지 죽전지구는 물론 분당신도시 보다도 서울과 가깝고 입지여건이 좋아 개발만 되면 특급 주거단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 성남시는 90년대 중반부터 판교 개발을 줄기차게 추진해 이미 개발 기본계획안을 작성해 놓은 상태다.

성남시는 ‘판교 개발에 대한 타당성 및 기본구상’이란 국토연구원의 보고서를 토대로 올 상반기중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신청을 건교부에 낼 예정이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판교 삼평 백현 운중 하산운동 일대 등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190만평은 주거용으로, 20만평은 첨단정보산업단지로 조성한다는 것. 또 총용적률은 분당의 180%보다 낮은 150%로 하고 인구밀도도 분당의 ha당 180명보다 낮은 ha당 150명 수준으로 개발해 전체인구를 7만5000명으로 한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20만평 규모의 첨단정보산업단지를 조성해 2006년까지 벤처기업들을 입주시킨다는 것.

성남시는 교통난 해소를 위해 수원 영통지구에서 판교를 거쳐 서울 서초구 양재지역으로 이어지는 고속화도로를 구상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택지 개발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2003년 상반기안에 아파트 분양 등이 시작될 것”이라며 “2011년까지 개발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남시의 이같은 계획은 김장관의 개발시사 발언으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김장관은 토지공사 사장 시절 “수도권 교통난은 판교처럼 계획개발이 가능한 땅을 묶어두고 용인 광주 등의 준농림지를 풀어준 것이 주된 원인”이라며 판교개발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었다.

▼문제점▼

전문가들은 용인시 일대가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교마저 개발되면 수도권 남부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성남시는 교통량을 고려한 도로 건설 등이 추진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물리적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쪽의 도로 개설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환경 훼손과 인구과밀화도 큰 문제다. 분당환경시민의 모임 정병준(鄭柄峻)사무국장은 “판교 일대는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변해 가는 수도권 남부의 마지막 녹지이며 인구과밀화를 막는 유일한 완충지대”라며 “수도권 남부지역의 전체적인 녹지보전 차원에서 판교 개발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서정보 김경달 이명건기자> suhchoi@donga.com

▼전문가 의견▼

판교신도시 개발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판적이다. 가장 우려하는 것이 사회기반시설 부족과 교통문제.

건국대 손재영(孫在英·부동산학과)교수는 “판교 일대를 개발하려면 그에 앞서 자족(自足)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교와 인접한 분당신도시는 인구 40만명을 기준으로 도시기반시설을 갖췄지만 죽전 수지 구성 동백지구 등 용인시 일대는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택지개발이 이뤄졌고 여기에 판교까지 가세할 경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

손교수는 또 “개발을 하더라도 먼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주택은 최소한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가 문홍길(文洪吉·공학박사)씨도 “현재의 판교개발 계획은 주택단지 조성을 위해 산업단지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보이는데 이는 거꾸로 된 것”이라며 “먼저 제대로 된 첨단 연구산업단지를 조성해 자족적인 신도시를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씨는 “원래 업무용지로 계획됐던 분당신도시의 중심인 정자동 백궁역 주변 지역이 결국 주상복합단지로 바뀐 뼈아픈 경험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교통문제와 관련해 “분당 죽전 구성 등으로 이어지는 동쪽 축은 이미 도로신설과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판교와 수지를 잇는 서쪽 지역에서 교통난 해소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교통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달기자> dal@donga.com

▼땅 소유자는 누구?▼

판교신도시 개발 예정지엔 어떤 사람들이 땅을 갖고 있을까.

그동안 이 일대 부동산 업자들 사이에선 ‘유력 인사 등 외지인이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란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판교 일대엔 현재 L그룹이 체육관 부지를 포함해 2만평 가량을 소유하고 있고 사업가 K씨도 임야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전직 장관 B씨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임야 1만여평을 소유하고 있다고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경기도 내 유력인사의 부인도 수만평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나 본인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성남=박종희기자> parkheka@donga.com

▼개발추진과정▼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는 75년 ‘그린벨트에 준해 관리하라’는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도권 남단 보존녹지’로 지정된 2000만평의 일부. 89년 분당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판교일대의 개발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남시와 한국토지공사 등은 당장 개발을 주장한 반면 건설교통부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

성남시는 지난해 4월 국토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인구 7만5000명의 저밀도 도시로 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보고서를 내는 등 개발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난해 7월 당시 이건춘(李建春)건교부장관이 수도권 교통난 심화 등을 이유로 ‘절대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판교 개발은 물건너 간 것으로 여겨졌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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