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인터넷 특허 주긴 줘야하는데…

  • 입력 2000년 1월 19일 20시 13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지난해 10월 호텔 예약 관련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소송을 당했다.

원고는 프라이스 라인이라는 인터넷 비즈니스기업. 프라이스 라인측은 조건에 맞는 호텔이 있을 경우 자동적으로 사용자의 신용카드에서 결제가 되는 방식이 자사의 특허기술을 흉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라이스 라인은 ‘인터넷 역경매’ 방식에 대해 세계최초로 특허를 인정받은 업체.

양사간 분쟁은 인터넷 비즈니스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이른바 ‘인터넷 특허’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특허는 ‘태풍의 눈’이다. 아직 인터넷 특허와 관련된 어떠한 결론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지만 앞으로 1∼2년 안에 이 문제가 인터넷업계 판도를 뒤바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특허 출원 봇물〓대전의 특허청에는 요즘 인터넷 관련 특허가 쇄도하고 있다. 한달 평균 200건 가량. 98년까지 인터넷 관련 특허 출원이 전무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세다.

특허청은 관련 인력을 보강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15명이던 컴퓨터 심사과 직원이 현재 25명으로 10명 늘어났다. 그러나 워낙 출원건수 증가속도가 빨라 일손이 달리는 상태.

출원된 특허후보 중에는 전자상거래 마케팅 아이디어나 독특한 노하우, 암호화 기술, 인증, 웹사이트 디자인 분야 등 인터넷 분야가 총망라돼 있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미 상용화된 것도 상당한 비중.

▽특허인가 아닌가〓특허청의 고민은 인터넷 관련 특허출원이 종전에 거의 다뤄본 적이 없던 새로운 유형들이라는 점.

특허청 박진석(朴眞石)심사관은 “제조기술 중심으로 돼 있는 현행 특허법 규정이나 특허관념으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행 특허법은 ‘특허란 자연법칙을 이용한 창의적 기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인터넷 관련 특허가 과연 실체적 기술이냐는 것.

이때문에 특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인터넷 관련 특허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와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전자는 인터넷 관련 노하우도 엄연한 신기술이라는 입장. 그러나 “특허권 범위를 넓게 잡으면 성장단계인 국내 인터넷 산업에 부작용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선점자의 기득권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인정하면 경쟁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 명쾌한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탓에 특허청에는 “이런 것도 특허 대상이 되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결론이 어떻게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일단 특허를 출원해 놓고 공개심사 청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내 진출 외국업체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허 인정 추이를 봐가며 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새로운 ‘남북 문제’〓세계적으로도 인터넷 특허 출원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입장은 나라별로 엇갈린다. 미국은 인터넷 특허 범위를 넓게 잡자는 주장. 인터넷산업이 가장 앞서있는 만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계산이다. 유럽 등 인터넷 선진국이 이런 입장에 동조하는 편이다.

반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후발국의 입장은 다르다. 인터넷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한다는 논리에서다.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불거졌던 ‘남북 문제(부국-빈국 갈등)’가 21세기에는 인터넷 산업을 둘러싸고 재연될 조짐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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