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탠더드]檢-警 '수사권독립 다툼' 국민만 피해

  • 입력 2000년 1월 14일 00시 43분


경찰청 정보국장인 P치안감이 지난해 5월 아파트 관리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서울지검 특수부에 전격 구속돼 경찰이 발칵 뒤집혔다. 검찰이 업무특성상 핵심요직인 정보국장을 구속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경찰의 수사권독립 문제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뜨거운 신경전을 벌이던 때여서 경찰은 “검찰이 표적수사로 ‘경찰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고 바짝 긴장했다. 보복수사 의혹이 일면서 경찰에 격앙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정보국장의 비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개인비리 차원에서 일단락됐다. 수사권 독립을 위한 여론싸움에서 힘을 얻어가던 경찰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김광식(金光植)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일선 경찰에 자숙과 자정을 당부했다.

98년 8월 청와대 하명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이 사건 무마 명목의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을 때도 표적수사 시비가 일었다. 그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복직했다.

작년초 김광식 당시 경찰청장이 수사권독립 추진의사를 밝히고 4월말 청와대 보고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공론화를 지시하면서 본격화했다. 긴장한 법무부와 검찰은 경찰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돌리며 ‘반격’에 나섰다. 검찰은 “그동안 경찰에 주어졌던 즉결심판청구권을 환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검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자 경찰청장이 직접 대응해 기자회견을 가지려다 돌연 취소했다. 수사기관간의 대립이 자칫 공권력 누수현상으로 비쳐지는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수사권독립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며 유보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검찰은 일선 파출소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경찰은 검찰에 파견돼 검찰의 손발 역할을 하는 베테랑 경찰관들에게 원대복귀 명령을 내려 긴장이 고조됐다. 논의 유보 지시 이후에도 갈등이 수그러지지 않아 수사권독립을 홍보하는 대자보를 경찰서 게시판에 붙였던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전보 조치되기도 했다.

수사권 독립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톱니처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자치경찰제는 김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으로 중앙정부에 집중된 경찰권을 분권화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에 걸맞은 자치 치안을 구현한다는 취지였다. 시도 자치단체장이 지방경찰 인사권을 갖고 자율적으로 치안행정을 펴야 하는데 계속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는 것은 모순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경찰은 자치경찰제를 위해 수사권독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검찰은 사건처리의 형평성 유지와 지역 유착비리의 근절을 위해 오히려 수사지휘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정권이 바뀌는 변혁기마다 수사권독립을 추진했다. 4·19직후는 물론 80년 신군부 집권 때와 ‘경찰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찰의 힘이 막강했던 5공 때도 숙원사업을 성사시키려다 결국 실패했다.

경찰은 ‘수사권독립’ 대신에 ‘수사권 현실화’란 말을 즐겨 쓴다. 전체 범죄 150여만건 중 96.7%를 경찰이 처리하면서도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사법경찰관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고 규정돼 수사의 보조적 지위에 불과하다. 범인검거 증거수집 등 경찰 간부가 대부분 수사지휘를 하면서도 검사가 수사 주재자의 권한을 행사해 책임과 권한이 상치된다는 게 경찰의 논리다.

경찰은 검사들이 연간 150여만건에 달하는 사건을 모두 지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97년 대검 국감보고 자료에 따르면 검사 1인당 연간 2154건, 월평균 179.5건, 매일 6건의 사건을 처리할 정도로 검사의 업무량이 과중한 편이다. 실제로 검사가 아닌 검찰 입회서기가 사건을 처리하기도 한다.

경찰은 단순한 폭행 교통사고도 수사 절차상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경찰의 조서는 재판 증거능력이 없어 피의자와 참고인이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같은 이중수사로 발생하는 국민 불편과 행정낭비도 엄청나다.

경찰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때와 달리 영장실질심사 등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고 경찰에도 고시특채 63명, 경찰대 졸업자 1612명, 법대졸업 수사관 448명, 간부후보생 1252명 등 우수 자원이 많기 때문에 “옛날의 경찰이 아니다”고 자질론을 일축한다.

검찰의 태도는 완강하다. 경찰이 형사사건의 혐의유무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면 검사를 거치지 않고 체포 및 구속영장 등 각종 영장을 법원에 직접 청구함으로써 국가소추권자인 검찰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검찰제도가 필수적이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경찰 수사과정에서 사건조작 사건은폐 강압수사 등의 사례를 들어 수사권독립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교통 폭력 절도사건과 행정법규위반사건 등 경찰이 단순 경미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전체 형사사건의 70%를 차지한다”며 “이런 사건일수록 부정과 인권유린의 소지가 큰 만큼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경찰이 검찰 송치 전까지 영장청구 등 독자적 수사권을 행사한다. 미국은 주에 따라 1년 미만의 경범죄와 교통사고사범은 경찰이 직접 소추(訴追)를 수행하기도 한다. 검사는 소추기관으로 마약 등 특수 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에서 기소여부 결정과 공소유지만 담당하고 수사보완 지시를 하지만 검경이 대등한 협력관계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일본은 미군정의 요구로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면서 경찰이 독자 수사권을 가진 1차 수사기관으로서 체포장 압수영장 등 강제처분권을 폭넓게 행사하고 있다. 검사는 소추기관이나 경찰수사를 보충하는 2차적 수사기관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검찰은 대륙법계 국가들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독일은 수사의 주체자로 검사의 명령권을 명확히 하고 경찰은 수사 착수 직후 검사에게 송부토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대 이관희교수는 “한국 검찰처럼 수사지휘부터 기소권까지 독점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없다”며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까지 수사권을 보장하고 검사는 기소단계에서 수사보완 지시와 인권침해 여부를 감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권독립에 대한 검경의 신경전은 잠복한 상태이지만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만큼 16대 총선이 끝나면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김재영변호사는 “수사권 독립문제는 검찰과 경찰의 기관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인권보장과 효율적인 법집행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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