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평양종과 보신각종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북한에서 뉴밀레니엄의 첫날 평양종(平壤鐘)이 타종됐다고 한다. 이 종은 평양 중심가에 위치한 중구역 경상동 대동문 부근에 걸려 있다. 마치 서울에서 보신각종 소리가 섣달 그믐날 밤과 새해 아침을 이어주듯이 북한에서도 평양종이 울렸다는 소식이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에서 발달한 우리의 범종(梵鐘)은 대개 비천(飛天)이나 보살 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평양종에도 비천과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으며 고리 부분은 용 모양이다.

▷평양종의 용머리에는 이 종이 제작된 내력이 쓰여 있다. 원래의 평양종은 1714년 대화재 때 금이 가서 영조 2년인 1726년 청동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종의 제원은 높이 3.1m, 지름 1.6m, 무게 513kg으로 보신각종의 절반 이하 크기다. 평양종은 보신각종과 마찬가지로 구한말까지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데 이용됐다. 북한당국은 평양종을 보물급으로 지정했다가 나중에 국보로 격상시켰다. 당초 북한의 문화재 중 국보 1호는 대동문이었으나 지금은 평양성이 국보 1호, 대동문은 4호로 조정됐다. 평양종은 국보23호다.

▷북한의 뉴밀레니엄 풍경 중에서 평양종 소리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이 신년사의 새로운 강조점이다. 북한당국은 올해 어느 때보다도 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작년에는 당보다 국방위원회와 선군(先軍)정치에 더 힘이 실렸다. 군과 국방위가 당보다 우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인 노동당 정치위원회를 제치고 국방위가 그 위상을 대체해 들어섰다는 견해가 많았다. 그래서 북한이 아직도 과도기적 군부통치를 계속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 총비서 직함으로 최고지도자 노릇을 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김정일(金正日)의 직함은 여러 개다. 국방위원장 군최고사령관 당총비서 등이다. 이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직함이냐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쟁이 있었다. 북한당국이 당의 영도를 강조한 배경에는 올해가 노동당 창건 55주년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55주년의 의미보다도 군정통치 방식에서 평상체제로 정상화하는 신호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북한이 당국간 대화에 호응해 보신각종과 평양종처럼 뉴밀레니엄의 민족화음(和音)을 내는 것이 더 진일보한 정상화가 될 것이다.

김재홍<논설위원> 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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