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CEO의 Y2K는…

  • 입력 2000년 1월 3일 21시 16분


“여전히 전등이 들어오고 있다.”

뉴질랜드는 선진국 중 처음으로 2000년을 맞은 직후 Y2K 안전보(安全報)를 세계에 전했다. 세계 각국이 Y2K 첫고개를 큰 사고없이 넘어 다행이다.

각국이 대대적으로 대비했지만 넘어야할 고개는 아직 여럿 남아있다. 시한폭탄을 찾아내 제거하는 게임과도 같았던 이 과정에 세계적으로 95년 이후 2800억달러가 투입됐다.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300조원이다. 작년에만 970억달러가 들었다. 이보다 더 큰 돈이 들었다는 통계도 많다. 이쪽에 돈을 쏟아넣는 바람에 경기가 죽는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Y2K는 컴퓨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사실은 더 큰 문제다. 2000년이 이미 와있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 이들의 인식 오류도 다름아닌 Y2K다. 새해 벽두, 한국엔 이런 문제는 없을까.

변화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CEO)다. 가장 빨리 가장 큰 폭으로 변해야 하는 과제도 CEO에게 있다. 2000년을 맞은 CEO에게 이런 인사말이 기다리고 있다. “미래의 운명은 결정돼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덕담일지 아닐지, 그것 또한 CEO의 선택에 달려있다.

2000년의 도래를 CEO가 제대로 인식하는지 여부가 그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지금은 CEO의 Y2K문제, 그것을 경계할 때다.

CEO가 궁리해야 할 첫째 과제는 2000년대에 걸맞은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이다. 지난해말 국내 벤처기업 등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손정의 일본 소프트방크 사장이 투자대상을 고른 첫째 기준은 바로 남다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달라진 환경에서 한 기업이 고객 주주와 어떻게 교류하고 어떻게 변화해갈지 구체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5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유수기업 CEO 120명을 초대해 ‘CEO서밋(정상회의)’을 개최했다. 회의의 주제가 ‘디지털시대의 경영전략’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털은 더이상 과학기술용어가 아니다. 디지털이 산업 전체를 변혁시키는 원동력으로 자리잡은 것이 이미 90년대 중반이었다. 이젠 ‘디지털의 폭발기’에 접어들었다고들 말한다. “2010년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온다” “기회를 선점하고 스스로 트렌드를 창출하라” 이런 말들은 디지털시대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컴퓨터의 Y2K대처엔 전지구인이 협력했다. 상업적 군사적 목적 외에 모처럼의 성공적인 협력이었다. 그러나 기업경영에선 1등끼리의 전략적 제휴만 가능하다. 그것은 협력이라기보다는 첨예한 경쟁의 결과다. 과거엔 ‘고독한 최고경영자’란 표현이 제법 어울려보였다. 그렇지만 격변기의 CEO는 고독을 느낄 시간조차 없을 것 같다.

홍권희〈경제부 차장〉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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