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동성동본 금혼

  • 입력 1999년 12월 19일 18시 47분


국회 법사위가 지난주 민법 개정안 가운데 동성동본 금혼조항을 현행대로 존속시키기로 결정한 데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다. 문제는 동성동본 혼인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법안 처리과정에서 여야 법사위 위원들이 보여준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 때문이다. 동성동본 금혼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97년 7월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일단락된 것이나 다름없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이 제도가 헌법이 정한 혼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고 보고 관련법의 개정을 입법부에 주문했다.

▽따라서 국회는 지난 정기국회에서 이에 맞도록 법을 손질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법사위 결정은 사문화(死文化) 되어 버린 법조항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정반대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어제 헌법재판소측은 97년 결정 당시에 ‘98년말까지 이 조항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99년 이후에는 조항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국회 결정이 현실적으로 무의미함을 환기시키는 지적이다.

▽법사위 위원들은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몰랐거나 아니면 알고도 그대로 결정했을 두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 만약 몰랐다면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법사위 위원들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알고도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떤 배경이나 동기가 있을 게 분명하다. 전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알고도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 배경은 무엇일까.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총선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지만 아직도 동성동본 혼인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적지않은 만큼 골치아픈 문제를 피해 간다는 생각에서 개정을 뒤로 미룬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다. 빗나간 추측일까.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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