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영웅 세기말 감회]복싱 '4전5기'신화 홍수환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영원한 챔프’ 홍수환(49). 파란만장했던 그의 복싱인생 반세기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중견 가수 옥희(46). ‘짧은 만남 긴 이별’의 애증이 교차했던 그녀는 홍수환에게 있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은 존재다.

이들의 운명적 만남은 70년대 중반 싹을 키웠다.

홍수환은 74년 7월3일 남아공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시작되는 국제전화를 통해 사상 처음 세계타이틀전(WBA밴텀급) 원정경기의 승전보를 전했다.

같은 해. 신인가수 옥희는 감미로운 발라드풍의 데뷔곡 ‘나는 몰라요’로 뭇 남성팬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홍수환은 ‘4전5기의 신화’가, 옥희는 가수로서 정상의 길이 남아 있었다.

결국 3년 후인 77년 11월26일. 홍수환은 적지인 파나마에서 절대 열세의 예상을 뒤엎고 ‘지옥에서 온 악마’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 두 체급 석권의 위업을 달성하며 당대 ‘사각링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옥희도 ‘이웃사촌’ 등 잇달아 히트곡을 내며 70년대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마침 옥희의 매니저는 홍수환의 절친한 선배로 미남 복싱스타와 인기 여가수의 만남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둘은 불과 1년여의 짧고도 강렬한 만남으로 딸을 낳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홍수환의 결혼 전 ‘과거’가 알려지면서 파국으로 치달았고 이후 16년간 단 한차례의 만남도 없는 긴 이별이 시작됐다.

둘은 재혼과 이혼의 아픈 상처를 또다시 겪어야 했다.

이들의 재회가 이뤄진 것은 오랜 미국생활에서 돌아온 홍수환이 95년 옥희의 42회 생일에 무작정 그녀에게 ‘돌격’을 감행하면서. 이민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홍수환은 머리카락이 하나 둘 빠져 앞 이마가 훤했고 ‘만년 청춘’ 옥희의 눈가에도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때였다.

“이제 다시 사는 거야.” 홍수환의 이 한마디에 미움은 눈녹듯 사라졌고 둘은 재결합의 꽃을 피웠다.

홍수환은 서울 동부이촌동 온누리교회 집사일을 맡으며 체육관(현 21세기프로모션 세기권투체육관)을 열어 후진양성에 힘을 쏟기 시작했고 연인을 되찾은 옥희의 얼굴에선 다시 생기가 피어올랐다. 가수생활 27년의 옥희는 내년 16년 만에 새 음반을 낼 꿈에 부풀어 있다.

요즘 이들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미국의 명문 메릴랜드대에 재학중인 딸 윤정의 성(姓)을 되찾는 일. ‘사랑의 상처’로 윤정은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 옥희의 성인 김씨를 따른 것.

“복싱보다 어려운 게 부녀지간의 일인가 봐요.”

세계를 호령했던 홍수환의 그 매섭던 눈매에서도 어느덧 중년의 푸근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

22년전 77년 11월 ‘지옥에서 온 악마’라 불리며 100%의 승률과 KO율을 자랑했던 카라스키야와 붙을 당시의 일이다. 외국 언론에선 내가 이길 확률이 10분의1도 안된다고 처음부터 기를 죽였다.

그러나 홍수환이 누구인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악으로 똘똘 뭉친 나는 동네 제재소에 부탁해 원목을 한아름 사다가 물을 잔뜩 먹였다. 그리고 한달여를 카라스키야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끼질 해댔다.

또 하나. 당시 카라스키야가 그로기 상태에서 로프에 기대 반쯤 누워 있을 때 내가 마무리 펀치를 날린데 대해 논란이 많은데 나는 분명 정상적인 경기를 했다. 심판이 제지하기 전까지는 주먹을 내는 것이 복서의 권리이자 의무다.

마지막으로 홍수환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4전5기의 신화’지만 챔피언 벨트를 뺏긴 뒤 3년만에 다시 챔피언이 된 것이 더욱 값진 일이다. 이는 세계 복싱 사상 유일하다.

▼내 생각에는…▼

△내가 주먹을 쓰면 아직도 2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초 ‘해결사’ 운운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단지 맞지 않을 자신은 있다. ‘36계 줄행랑’이 있으니까.

△70년대 우리가 선수생활을 할 때는 4라운드를 뛰면 4만원을 받았다. 요즘 물가로 따지면 200만원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실태는 어떤가. 12분간 매맞은 대가가 요즘도 40만원에 불과하다. 차라리 길거리에서 한대만 맞아도 200만원은 더 받을 것이다.

△궤변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97년 우리나라가 IMF위기를 맞은 것은 복싱열기가 시들해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복싱은 배고픈 운동이다. 공격적인 정신력이 필요하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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