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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0월 17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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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사와 논쟁을 벌이고는 했다.
여보쇼, 내가 몇번이나 말했소. 나는 간첩이 아니오. 그건 누구보다도 당신네가 잘 알지 않소.
종이때기 한 장 가지고 뭘 그래. 눈 딱 감고 지장만 꾹 누르면 대번에 처우가 달라질텐데.
당신은 정말 종이때기 한 장 가지고 뭘 그럽니까. 내가 저쪽 사상을 가진적이 없는데 어디서 어디로 돌아선단 말이오. 오히려 내가 빨갱이라는 걸 인정하고 독재정권의 폭력을 합법화 해달라 그 얘기요?
그들은 직접 나서는 것이 별로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외부 사람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면회도 시켜주지 않던 가족들이 찾아와 애걸하고 간 뒤에는 폭력배들을 시켜서 괴롭혔다. 다음에는 각 종교 교파마다 교인들을 동원해서 결연을 시켜 주었다. 이제는 일반수들의 교화에 자원봉사 식으로 진행이 되어 훨씬 다행스런 일이지만 전에는 주로 정치범이 그 대상이었다. 그들은 먹을 것을 한 보따리씩 해가지고 와서 우리를 차례로 불러내어 먹였고, 직계가족의 편지도 몇백자라고 한정하고 사흘 뒤에는 그도 압수하여 영치시키던 것과는 달리 사흘이 멀다하고 정치범 개개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종교적인 것과 머릿속을 바꾸라는 사연이었다. 하여튼 나는 몇 차례 시달리지 않아서 방침이 바뀌었으므로 선배들 보다는 괴로움이 훨씬 빨리 지나간 셈이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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