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33)

입력 1999년 9월 30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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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내 공간으로 들어선다. 커튼 사이로 희부염하게 새어 들어온 빛 아래 마치 살아있는 것들이 숨죽여 엎드리고 있는 듯한 가구와 사물들을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나 혼자서만 죽은 자처럼 느껴졌다. 재떨이며 구겨진 빈 담배갑이며 커피 잔이 뎅그라니 놓여 있는 책상과 그 앞과 주위에 사람이 앉았던 형태 그대로 조금씩 돌려져 있거나 뒤로 빼낸 의자들은 그 위의 허공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얹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아 본다. 정확하게 오른 손이 찻잔의 귀에 가서 닿았다. 찻잔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면 화장품 냄새가 난다. 잔 위에 내가 입술을 대었던 흔적이 불그레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박명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어디 불탄 자리나 페허가 된 마을 가운데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어느 결에 잠이 들었던 걸까. 의자에 앉은채로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리고 그 위에다 머리를 파묻고 잠들었다. 대낮의 햇빛이 짙은 포도주 색의 커튼을 발갛게 밝히고는 틈으로 새어 들어와 내 머리 위에 곧장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커튼 자락을 여미려고 일어났다. 두 가닥을 잡아 꽁꽁 여며 놓고는 그제서야 방으로 들어가 누울 생각이 났다.

날이 저물어 다시 주위는 어두워졌고 나는 어슴프레 잠이 깨어 이불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몸살이 온 것 같았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나고 온몸이 얻어 맞은 것처럼 아팠다.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서 씽크대 옆의 냉장고를 열어야만 한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눈물이 스물스물 나오더니 눈꼬리를 지나 관자놀이를 타고 귓바퀴로 흘러내렸다. 은결이 생각이 났다. 보고싶어 집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현관에서 나오면서 마루에다 세워 놓고 돌아서는 광경이 먼저 떠올라서 지겨워졌다. 나는 그 애와 헤어질 거라는 예감이 그때 들었다. 또 문득 빨래들이 울긋불긋 널려있던 하얀 건물의 검은 창문들이 생각났다. 그의 짤막한 몇줄짜리 엽서도 생각이 났다. 밖의 먼 어둠 속에서 바라보면 자기도 하나의 별이 될 거라구? 별은 무슨 별, 망막도 동공도 사라져버린 검은 구멍일뿐이야. 그래, 나중에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한참 지나서 알렉산더 플라츠 모퉁이의 선술집에서 크리스티네 라봔트의 시를 누군가 이야기 했지. 별을 제발 쫓아 버리라는 시가 아니었을까.

별을 쫓아 주렴

이웃 개야,

별은 저렇게 까닭없이 조소하잖아,

개말이나 한 마디 해 주렴!

별에게 욕이라도 해 주고

날짐승처럼 쫓아 주렴,

별 자리 그림은 내게는 쓸데없는 것.

넌 이제 나의 개 별이야!

그만하면 이제는 충분하잖아

이 어두운 마을에 대해?

이 마음 눈감고 고통을 찾아

짓메어지도록 고통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