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JP가 돌린 돈봉투

  • 입력 1999년 8월 17일 18시 25분


자민련 명예총재인 김종필(金鍾泌·JP)국무총리가 14일 총리공관 만찬자리에서 자민련 의원들에게 정치권에서 흔히 ‘오리발’이라고 불리는 돈봉투를 돌렸다고 한다. 47명이 참석하고 8명은 불참했다지만 그중 몇명을 빼고는 돈봉투가 전달돼 ‘오리발’총액이 2억5000만원은 될 거라는 보도다.

우선 궁금한 것은 JP가 2억원이 넘는 큰돈을 어디서 마련했을까 하는 점이다. 총리의 월급이나 판공비에서 마련하기에는 너무 큰돈이다. 더구나 ‘오리발’에 쓰라고 국민 세금으로 총리에게 월급과 판공비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JP는 23억9000여만원(99년 2월 현재)의 재산가이다. 그렇다고 사재를 털어 ‘오리발’자금을 마련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민련 주변에서는 “모처로부터 지원받았을 것”으로 본다고 한다. 도대체 그 ‘모처’가 어딘가. 투명한 정치를 위해서는 이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JP는 자민련 의원들에게 ‘오리발’을 주면서 ‘작은 성의’일 뿐 하루전 국회에서 있었던 총리 해임 건의안이 불발된 것에 대해 보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저 용돈으로 의원 한 사람에 500만원씩 준 것이란 얘기다. 자민련 의원들은 얼마전 박태준(朴泰俊)총재로부터도 200만원씩을 받았다. 그때는 휴가비 명목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민련의원들은 한달에 용돈으로만 700만원씩 받은 셈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정치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서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걷고 투명하게 쓰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공동정권의 수장인 총리는 출처도 밝히지 않은 거액을 자기당 의원들에게 뿌리고 있다. ‘다 그런 거지 뭐’ 할 거라면 정치개혁은 헛구호에 그칠 것이다. 진정 정치개혁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번 JP의 ‘오리발’부터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치개혁은커녕 공동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한층 높아질 것이다.

JP는 자민련 의원들에게 ‘오리발’을 건네는 자리에서 “나를 따르면 내년 4월 총선에서의 당선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언질도 주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부장적 보스정치’의 전형이다. 우리가 본란에서 여러 차례 극복과 청산을 주장했던 ‘구태 정치’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JP는 그동안 내각제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와 국민이 살길이라는 것인지, JP자신과 자기네 정파가 살길이라는 것인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전자라면 국민으로부터 그만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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