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여성특집]캐서린, 고행끝 聖者반열 올라

  • 입력 1999년 5월 21일 10시 58분


14세기 소녀들은 대개 12,13세에 결혼을 했다. 그들이 처녀라는 것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조혼의 일부 이유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 캐서린은 일곱살 때 벌써 자신의 정절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맹세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언니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 이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17세때부터 그녀는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집안의 작은 방에 혼자 틀어박혀 기도를 하면서 엄격한 고행을 했다. 3년간 말을 하지 않고, 빵과 채소와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무 판자 위에서 잠을 자며 하루에 세 번씩 피가 날때까지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한 것이다. 캐서린의 편지들을 번역하고 있는 수잔 노프케 수녀에 따르면 “그녀는 순교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순교자가 되는 것은 당시 여성들이 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캐서린은 20세 되던 해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나타나 그녀의 손에 약혼반지를 끼워주는 환상을 본 후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찾아간 병원에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차츰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신의 소망과 충고를 담은 편지를 이들에게 대필시켜 이웃 가족 군주 종교 지도자, 심지어는 교황에게까지 보냈다.

그녀는 이 편지들에서 매우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으며 교황에게 반발하는 세력을 진정시키기 위해 여러 도시를 돌면서 대중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여성들이 남의 눈에 띄어서도 안되고 자신을 드러내서도 안되었던 반면 캐서린이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계시의 말씀을 전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서린은 대외활동을 하면서도 고행을 계속했다. 환자의 종기에서 흘러나온 고름을 마시기도 했고, 심한 단식을 강행하기도 했다. 식사를 한 후 막대기를 목안으로 집어넣어 다시 토해내는 경우도 흔했다. 거의 잔혹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여성 고행자들의 이런 행동은 그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사제들은 여성들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찬양했으며 이를 부추기기도 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캐서린이 실행한 단식은 거식증의 증세로 분류된다. 그러나 당시 여성들에게는 단식을 비롯한 고행이야말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과거 여성들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 처해있는 오늘날의 여성들 사이에도 거식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통을 통해서만 여성의 힘을 인정해주는 전통적 사고가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그 좋은 예이다. 처음 유례없이 많은 권력을 지닌 퍼스트 레이디로 수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그녀는 최근 남편의 섹스 스캔들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얻고 유력한 상원의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 역시 개인적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시애나의 캐서린은 생이 끝나갈 무렵 극단적인 단식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이미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결국 서른세살의 나이에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많은 소녀들이 그녀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필자〓제니퍼 이건:소설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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