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고국에 돌아온 「심청」

  • 입력 1999년 5월 18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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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주제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효’이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심청의 행위야 말로 우리가 아는 ‘효’의 마지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다른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인 점을 생각하면 심청전의 작자는 평범한 의미의 효도조차 할 수 없었던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효의 개념이 뚜렷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두 주장 모두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효의 개념이 우리와 다른 서양인의 눈에는 심청전의 내용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대본을 쓴 독일 작가 하랄트 쿤츠가 제시하는 해석이 흥미롭다. 쿤츠는 죽음과 맞바꾼 심청의 효보다 장님일 때와 눈 떴을 때를 인간 실존의 구속과 해방의 문제로 보고 심봉사의 신체적 변화를 더 중시했다.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은 음악도 좋지만 인간 실존 문제를 부각시킨 쿤츠의 대본 덕에 서양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뮌헨올림픽 축전 오페라로 초연된 이래 작곡자의 대북활동 문제로 국내 공연이 금기시됐던 오페라 ‘심청’이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른다. 첫 공연 후 무려 27년 만의 일로 오페라 팬들의 감회는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20일부터 6월2일까지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작품이다.

▽애석한 일은 작곡자가 이미 4년 전 작고해 고국무대에 올려진 자신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전에 고향 통영 땅을 애타게 밟아보고 싶어 했던 고인을 생각하면 뒤늦었지만 그의 걸작이 고국의 무대에 오르는 게 다행스럽다. 오페라 ‘심청’의 초연을 계기로 윤이상의 작품이 국내 음악계에 의해 포용되고 한국이 윤이상 음악의 센터가 되기를 바란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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