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동여당의 네번째 날치기

  • 입력 1999년 5월 4일 19시 33분


어이없고 허탈하다. 또 날치기라니. 국민의 정부임을 자임하고 이른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정부의 공동여당이 보인 비민주주의적인 행태는 참으로 민망하고 무색하기 짝이 없다. 1월의 사흘 연속 날치기에 이어 공동여당은 이제 날치기에 아무런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듯하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법안의 날치기 통과 과정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3일밤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에게서 사회권을 넘겨받은 국민회의 소속 김봉호(金琫鎬) 국회부의장은 국민회의 의석 한가운데서 국민회의 의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의사봉을 두들겼다. 정부조직법개정안 등 상정된 법안들이 “찬성 1백50표, 반대 96표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는 것이었다. 야당의원들이 모두 일어서 있는 가운데 몇몇은 서류를 집어던지고 한쪽에서는 여야의원들간에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 도대체 기립표결을 어떻게 하고 또 그 수를 어떻게 세었단 말인가. 기립표결의 경우 앉아 있다 일어나야 의사표시가 되는데 이날밤 상당수 여당의원들은 김부의장 주위에 계속 서있지 않았는가. 이날 통과됐다는 법안이 과연 유효한 의결절차를 밟았다고 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날치기 통과된 법안의 내용을 봐도 문제다. 대통령 직속의 중앙인사위원회는 공무원 인사를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 신설한다지만 대통령의 인사독점에 따른 폐해의 우려도 만만찮다. 공무원 개방형 임용제 역시 공무원 사회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의 이면에는 공무원의 반발과 정치권의 입김 등으로 공직사회가 크게 흔들리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특히 국정홍보처 신설은 언론 통제를 주목적으로 한 ‘구 공보처’의 부활이 아니냐며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들과 언론이 반대하고 여론도 부정적이었던 사안이다. 더구나 법안대로라면 장차관급이 4명이나 늘게 돼 작은 정부는 공염불이 됐다.

이렇게 아직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주요 법안들을 국회소관 상임위 법사위 및 본회의 심의를 하지 않고 일거에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여당측은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총무회담 몇차례 해보고 안되니 날치기라면 이런 국회는 있으나마나다. 5월3일이 절체절명의 시한도 아니잖은가. 야당인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방조하지 않았느냐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책임의 근원은 집권여당에 있다. 이번 날치기로 여야는 다시 극한대립으로 돌아섰다.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요 민생이다. 언제까지 이런 추한 정치, 절차를 무시하는 날치기를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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