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부러운 「부시 정보센터」

  • 입력 1999년 4월 29일 19시 28분


국가정보원 본부 건물의 이름이 국회의 만장일치 결의에 따라 ‘노태우 정보센터’로 바뀐다. 이종찬원장은 기념식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이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국가의 정보업무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오늘부터 ‘노태우 정보센터’로 바뀐다”고 선언한다.

국회에서 또 다른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구 민정계 출신 의원들이 발의한 이 결의안은 영종도 국제공항의 이름을 ‘전두환 국제공항’으로 개명하는 것.

김대중대통령도 개명을 환영하는 축하메시지를 발표한다. 기념식에서 전직대통령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참석자들은 모두 기립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없다.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한국에 대입해 봤을 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26일 워싱턴 근교에 있는 본부 건물의 이름을 ‘조지 부시 정보센터’로 바꾸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에 앞서 CIA국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됐던 부시의 업적을 기려 ‘조지 부시 정보센터’로 개명하자는 결의안이 미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부시는 기념식에서 “고향에 있는 한 고교의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꾸는 것도 3대2의 근소한 표차로 통과됐는데…”라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목이 멨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는 정보기관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을 때 CIA를 다시 일으켜 세운 위대한 국장이었다”는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에는 워싱턴의 내셔널 공항이 같은 절차에 따라 ‘로널드 레이건 내셔널 공항’으로 개명됐다.

현직대통령을 ‘독재자’로 규탄하고 전직대통령끼리도 ‘주막 강아지’ ‘골목 강아지’라는 말을 주고받는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들이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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