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97)

  • 입력 1999년 4월 22일 17시 52분


오형은 시골 어디요?

가까워요. 경기도.

요새 시골서 먹구 살기 힘들죠?

예, 뭐 고등학교 나와서 빈둥거리다 군대 갔다오구 늦어버렸죠. 장가들기 전에 목공 기술이라두 배울라구….

시장 들렀다 갑시다. 저녁 찬거릴 사야지요.

전 먹었어요.

그래요? 음 그러면 말이죠 어디가서 한 잔 하구 들어가지.

그럽시다. 오늘 내가 한 잔 사지요.

왜요?

나는 그의 기분에 맞도록 쾌활하게 말했다.

신입식이죠. 앞으로 잘 좀 봐주시라고.

박은 껄껄 웃었다.

한 잔 갖구 될까. 어디 두고 봅시다.

그는 벌집 동네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들 사이에 자리잡은 주점으로 들어갔다. 그가 긴 나무의자에 가서 걸터 앉으며 말했다.

여기가 우리 단골집이죠.

주점은 한 대여섯 평쯤 될까, 탁자가 세 개 놓였고 주방도 사람 하나 들어서서 궁둥이를 겨우 돌릴 정도였다. 이를테면 보다 성공한 포장마차 규모라고나 할까. 그래도 벽에는 정성스럽게 붓글씨로 쓴 안주와 식단이 붙어 있고 주방의 화덕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안쪽 탁자에는 먼저 온 사람들 셋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줌마, 나 매일 먹는 그거 주세요.

알았어.

내가 궁금해져서 박에게 물었다.

매일 먹는 게 뭐요?

순서가 있어요. 먼저 소주 한 병하구 고갈비 한 마리, 그러구나서 데친 두부 한 모루 끝나는데 오늘은 저녁을 안 먹었으니까 나중 입가심으루 라면 하나 추가요.

그거 아주 실속 있겠는데.

칼집을 내어 소금 뿌려 구운 고등어 한 마리가 아직도 지글거리며 탁자에 올라왔고 소주 한 병이 따라왔다. 그는 술병을 집으려는 나를 손끝으로 가볍게 뿌리치며 내 잔에 먼저 술을 따라 주고나서 내게 병을 양보했다. 나도 그에게 술을 따라 준다. 박이 술잔을 치켜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아, 듭시다. 오형의 신입을 축하합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박은 다시 자작으로 한 잔을 거푸 마셨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아직도 톱밥이 하얗게 앉아 있었고 작은 잔을 잡은 손가락들은 투박하고 더러워서 무슨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술을 넘길 적에 드러나는 그의 목덜미 근육은 참으로 건강하고 당당해 보였다. 주어진 노동을 끝낸 사내의 만족한 피로가 그의 풀어진 눈 언저리에 가득 실려 있었다.

오 형 애인 있어요?

고등어의 살점을 연신 맛있게 뜯어다 먹으면서 그가 내게 물었다.

아직 그런 거 없수다. 성가셔서….

내가 하나 소개해 드릴까?

아니 뭐… 내 한 몸두 거추장스러운데.

박이 나를 향하여 한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걱정마슈. 일당이라구 받아 봐야 어차피 모자라긴 마찬가지요. 내가 이래뵈두 기능공인데 한 달 살구나면 맨날 적자야. 저축 한 푼 못 해보고. 그러니 언제 장가를 들어 일가를 이루겠소?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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