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3월 18일 19시 0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촛불 끄는 당번을 정해야 해. 안그럼 이 집 홀라당 탈테니까.
나는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촛불을 다시 켰어요. 촛불을 켜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모든 연결이 끊어지고 산간 벽지로 저만큼 물러났지요. 그날 나는 당신과 정말로 같이 잤지요. 처음처럼 다시 어색하게 따로 자리를 펴고 누웠다가 내가 먼저 돌아 누우면서 그랬던 거 생각나요?
이쪽으루 안올래요? 잠이 안와.
했더니 당신은 그래두 조금은 머뭇거려야지 글쎄 불쑥 이불을 들치고는 내 자리루 들어와 나를 꼭 껴안았지요. 그 뒤로 아무 말도 없이. 그러나 거칠지는 않았어요. 당신의 입술은 좀 튼 거 같았어. 담배 냄새가 났지요. 이튿날 동이 훤해질 때까지 우리는 무슨 얘기가 그렇게 많았던지. 나는 가끔 불안했어요. 당신이 방문을 열고 베개에 턱을 받치고는 바깥 어둠 속을 멍하니 내다보며 어디론가 생각이 가 있었을 때. 그 때 당신은 위험에 빠진 동료들을 생각했나요, 아니면 임무 같은 걸요.
나 학생 때 사귀던 이가 있었어요. 같은 미술대 조소과 상급생이었어요. 언젠가 당신에게두 얼핏 얘기를 했던 듯 싶어요. 내가 그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어느 겨울이었죠.
그 때 아버지가 병원에서 손 들고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와 나하구 정희의 간호를 받고 지낼 무렵이었는데, 어떤 날은 아버지 옆에서 꼬부려 새우잠을 자는 날도 많았어요. 그런 날은 으레 새벽에 잠을 깨죠. 새벽에 잠을 깨면 그 우울한 광경이라니. 머리맡에는 진통제 약병과 주사기가 흐트러져 있고 길 쪽으로 나있는 창문으로는 빛이 훤히 들어오지요. 환자는 이미 해골의 윤곽이 다 드러나서 두 눈은 퀭하니 꺼져 있고 광대뼈가 불거져 나와 있어요. 아버지는 기가 다 빠져나간 것 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숨소리도 없이 잠들어 있어요. 이미 돌아가신줄 알고 소스라쳐 일어나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건드릴까 말까 하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팔을 잡아 가만히 흔들어 보지요. 그러면 가냘픈 한숨을 쉰다거나 움찔 하거나 그러시거든요. 어쨌던 그날도 그런 날이었을 거예요. 하, 숨이 막혀 버럭 소리라도 지르며 뛰쳐 나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새벽에 나는 갈데없이 학교로 나오는 거예요.
학교에는 아무도 없어요. 나무도 앙상하고 건물의 유리창은 아직 시커멓게 죽어 있고 가로등이 부옇게 켜진 채지요. 복도와 계단에서는 내 발자국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져요. 나는 실기실로 들어갔어요. 거기 가면 석유 난로도 있고 우리가 번갈아 갖다 놓은 커피나 녹차도 있거든요. 실기실로 들어가 불을 켜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이젤이 접힌 채로 벽걸이처럼 늘어섰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직 미완성인 그림들이 널려있는 그 너머에, 나는 처음엔 그게 두 개의 책상을 붙인줄은 모르고 교실 바닥이 솟아 오른 줄로 알았어요. 그 위에서 뭔가 시커먼 짐승 비슷한 길쭉한 것이 꿈틀거리는 거예요. 그래도 소리는 지르지 않고 놀라서 입만 벌리고 꼼짝없이 지켜 보았지요. 지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자루 같은 데서 사람의 머리가 쑥 나왔어요.
어머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쪽도 놀랐는지 거의 함께 소리를 질렀죠.
어 어어….
자세히 보니 누군가 슬리핑 백 안에서 자구 있었던 거예요.
<글:황석영>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