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철/현충사 찾는 정치지도자

  • 입력 1999년 1월 11일 19시 21분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민정당 대표시절인 87년 ‘6·29선언’을 발표하고는 곧바로 국립묘지를 거쳐 충남 아산 현충사로 향했다. 그는 충무공 영정에 참배한 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음을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라는 문구로 심경을 표현했다.

훗날 6·29선언에서 노전대통령의 역할은 충실한 연기자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아무튼 그는 민주적 지도자로 부상해 직선대통령이 됐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94년 4월28일 현충사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그때 나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경제 국난을 초래했다는 오명을 못 벗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96년초 첫 지방나들이를 했던 곳도 현충사였다. 그런 그가 국회 529호실 사건 등으로 정치적 고비를 맞고 있는 10일 다시 이곳을 찾았다.

그는 방명록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쓴 뒤 “충무공께서 몸을 던져 나라를 지켰듯 우리 또한 자신을 버리고 나라와 겨레를 지켜야 한다”며 대여투쟁의지를 다졌다.

현충사는 이렇듯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물론 정치인들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조국을 구한 충무공 정신을 배워 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데 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충사 참배가 정쟁으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이벤트성 행보’로 변질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일 성 싶다.

문철<정치부> 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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