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55)

  • 입력 1998년 12월 21일 19시 24분


화 적 ⑪

광고회사 다닐 때 나는 팀웍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나는 팀웍이란 말이 꼭지가 돌도록 함께 취해서 어깨동무를 한 채 연탄재 위에 엎어진다거나, 자기 일 끝내놓고 옆에서 괜히 자리라도 지켜준다며 커피를 뽑으러 들락거리거나 전화기를 들었다놓았다하면서 정신만 산란하게 하는 비효율적인 겉치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팀웍이 없는 게 아니라 책임의 소재와 그 영역에 분명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런 내가 유한책임회사의 임원처럼 이 일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딱히 소일거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또한 나라고 해서 브라질 여행에 흥미가 없을 수는 없었고 뻬뜨루 최가 제시한 자서전 대필료도 만만한 돈은 아니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게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신문사의 편집기자 자리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남의 잘못된 점을 빨간 펜으로 교정보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딱 맞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자리를 얻으려면 인사에 권한을 쥐고 있는 김부식의 부장을 위해 쇼 비즈니스를 성공시켜야 했다.

브라질행 티켓이 왔다는 말에 김부식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다음날로 나를 자기의 부장에게 인사시켰다.

“제가 말씀드린 ‘평산 인터테인먼트’ 김형준입니다. 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태성이라고 오지탐험도 하고, 텔레비전에 가끔 나오잖아요. 그분이 사장이구요, 이 친구가 이사인데 이번 브라질 쇼에 팀장이에요.”

“아, 그래요? 앉으세요.”

부장은 자기 책상 옆의 작은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준비해간 기획서를 꺼냈다. 조국의 허풍과 승주의 거짓말을 내 일생일대의 작문 솜씨로 잘 가공한 문건이었다. 부장은 거기에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관광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만 궁금해 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야 그는 기획서를 건성으로 들쳐보며 자기네 기사는 주로 이민 30주년을 맞는 교민사회 탐방기이고 브라질 쇼에 관한 것 한두 개를 끼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터에는 고딕체로 이름이 크게 들어가겠지만 이른바 후원사의 일이란 고작 그 정도였다.

신문사 휴게실에서 김부식과 나는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그는 펠레 건을 꼭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영화 속에서 마피아들이 뒷거래할 때처럼 입술을 조금만 달싹거리며 이빨 사이로 발음을 내보냈다.

“부장한테는 말하지 마. 새나가면 꼭 초치는 놈들이 있으니까.”

“알았어. 뻬뜨루 최한테 팩스 보냈으니까 곧 연락 올 거야.”

이렇게 말해놓고 나는 나의 순발력에 은근히 놀라고 있었다. 거짓말 또한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인간이란 다 그렇게 때에 따라 뻔뻔스러워지도록 돼먹은 건지도 모른다. ‘저도 사람인데’ ‘사람이 하는 일인데 설마’…이런 용법에서 ‘사람’이란 뜻은 불완전한 구석이 있고 불합리한 인정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인간미’라는 말도 완벽함보다는 불완전함에 대한 예찬이다. 조국이나 승주 같은 놈들을 가리켜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도 자신의 뻔뻔스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끝까지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조국의 말버릇대로라면 ‘인간적으로’.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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