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50)

  • 입력 1998년 12월 15일 19시 30분


화적 ⑥

사장의 담판은 성공을 거두었다. 쌍마자동차의 지프 두 대가 오지탐험에 맞도록 특수 개조되었고 한 달 동안의 취재에 필요한 경비가 협찬금으로 떨어졌다. 이제 후원사를 잡을 차례였다. 후원사란 언론이었다. 사실은 이것이 회장 혹은 홍보실을 움직인 진정한 이유일 텐데, 사장은 언론에서 대대적인 보도를 할 거라며 방송사와 신문사에 깔린 자신의 인맥을 구체적으로 들이댔던 것이다. 인지도 및 홍보효과, 즉 사람들 입에 한 번이라도 더 오르내리는 것, 그리고 이미지 제고야말로 협찬의 진짜 이유였다. 공개적인 미담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사장이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얼마간 일했으므로 언론사에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사장은 첫 만남에 호감을 사버리고 두 번만 만나도 십 년 위아래는 모두 다 지기가 되며 세 번째부터는 모조리 친인척 관계로 만들어버렸다.

가령 아들을 가진 상대에게는 자신의 일곱 살난 딸을 내세워 ‘사돈’이 되었고, 자신의 고향과 반경 1백킬로미터 안에 있는 지역 출신이면 ‘한동네 사람’이었다. 조금 복잡한 친척 계보로는 ‘구멍 동서’나 ‘기둥서방’, 더 복잡한 ‘젊은 오빠’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동물이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먹이와 생식을 위해서이듯 사람도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방송사는 제 돈을 거의 안 들이고도 오지탐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신문사 또한 출장비 안 드는 해외취재를 원했다. 그리고 다들 어떤 종류의 향응으로써 틈틈이 ‘업무로 인한 피로’도 풀고 싶어했다.

이벤트 사업이란 한마디로 ‘엮기’였다.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서로 엮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가 오지탐험을 한다. 그것을 방송사에서 찍어 프로그램으로 만든다. 그 화면에 협찬사의 로고가 붙은 자동차가 등장한다. 시청자는 밀림을 누비는 그 자동차에 호감을 갖는다. 언젠가는 그 회사의 자동차를 살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야바위꾼처럼 이리저리 옮겨서 돈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3차산업의 본질이었다. 조국은 사장의 사업방식을 통해서 매스 미디어, 서비스업, 문화사업 등 현대산업 구조의 성격을 꿰뚫고 있었다. 물론 자기 자신은 그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하겠지만.

“폼이야 나지. 해뜨는 하늘을 배경으로 지프가 깃발을 휘날리면서 사막을 넘어가는 장면, 아랫도리만 가린 추장에게 코리아라고 박힌 티셔츠를 벗어서 입혀주는 장면, 그런 건 그림이야. 근데 협찬사는 그런 거 보지도 않아. 자기네 자동차가 화면에 몇 분 나왔는지, 어디어디 협찬이라는 자막 글자가 몇 포인트인지, 테두리를 둘렀는지, 색깔을 넣었는지, 그런 거 갖고 돈을 깎네 마네 얼마나 치사한데.”

조국은 홍보실에 불려가 기다리는 일에 이력이 나 있었다. 글씨라고는 읽기 싫어하는 그가 굴러 다니는 사보를 펼쳐보았다면 얼마나 지루했는지 알 만하다. 조국은 그 사보 안에 있는 낱말풀이 문제가 절반 이상 풀어져 있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근거로 홍보실 직원의 무식함을 성토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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