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 (40)

  • 입력 1998년 12월 3일 19시 11분


휴거 ①

우리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인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였다. 장례식날 이후 두환에게서 소식이 끊어졌던 것이다. 그가 불쑥 전화를 걸어온 것은 덕수궁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늦가을이었다.

“조국이 승주, 걔들은 직장 옮겼냐? 전화가 안 되더라. 그래도 한 자리에 가만 있는 놈은 너뿐이구나.”

두환은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로 첫인사를 던졌다. 광고회사는 유동이 많고 직급 인플레가 심한 곳이었다. 입사 동기들은 다른 회사로 스카웃되거나 못 견디고 나가서 뭘 차리거나 아니면 승진이라도 해 있었다. 만년 차장인 나에게 있어 ‘오래 버티고 있다’는 말은 ‘꼭 쫓아내야만 나가겠냐?’는 말과 똑같았다. 어쨌든 내가 우체통처럼 풍상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 덕분에 두환의 청첩장이 전해질 수 있었지만 말이다.

두환의 신부는 아홉 살이나 아래인 데다 턱이 약간 뾰족한 것 빼고는 인물도 흠잡을 데 없다고 했다. 또 돈많은 가죽 공장집 딸이었다. 두환은 결혼식을 마치고 그날 밤 신혼여행 아닌 이민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맏사위답게 처가의 피혁사업이 외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의 임무를 맡았는데,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그는 이번에도 역시 ‘온몸’을 바치기 위해서 아예 화끈하게 이민을 자청했던 것이다. ‘이놈의 나라에서는 되는 게 없어’라는 인생관 탓이기도 했다.

처음에 그가 목적지로 삼은 곳은 미국이었다. 때마침 미국 행정부에서 계속되고 있는 파업이 대사관까지 파급이 되었으므로 비자발급 업무는 거의 중단 상태였다. 성질 급한 두환은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코스타리카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어차피 중남미 모두가 그의 본거지가 될 터이니 출발을 어디에서 하든 상관없다고 기개를 과시했다.

두환의 당부대로 우리는 결혼식장에 가족을 동반했다. 나와 운총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승주 부부에게는 남매가 있었다. 늦게 결혼한 조국의 딸은 아직 젖먹이였다. 조국의 결혼식장에서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세 명의 마누라들은 보자마자 반색을 했다. 재빨리 아이들을 남편에게 떠맡기고 저희들끼리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더니 두환의 새장가에 대해 수군대기 시작하는 거였다. 우리 셋은 아이들을 건사하느라고 두환의 찢어질 듯한 입을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다.

조국의 젖먹이 딸은 처음부터 칭얼거렸다. 조국은 땀을 뻘뻘 흘리며 아기를 흔들어대더니 결국에는 복도로 데리고 나가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먹인 다음에야 식장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임꺽정〉에 나오는 장사 곽오주가 우는 아기를 패대기치기 직전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승주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혼내랴, 울면 데리고 나가랴, 야쿠르트를 사줘서 달래랴, 나간 김에 오줌까지 누이고 오랴, 입속으로는 계속 마누라한테 투덜대랴,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나는 성질 못된 아버지답게 아들애의 어깨를 아프도록 눌러서 옆자리에 앉혀놓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꼼지락거릴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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