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핵의혹과 국제신의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3분


북한 영변의 지하시설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가 오늘부터 사흘동안 평양을 방문한다.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국제신의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의 방북(訪北)이 북한의 핵의혹 논란을 투명하게 타결짓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로 야기된 최근의 북―미(北―美)간 대립은 더욱 악화되고 마침내는 한반도의 안정까지 해칠지 모른다.

북한은 현재 제네바 핵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우리의 시각은 다르다. 미국은 내년 봄까지 영변 지하시설에 대한 방문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네바 핵합의를 동결하거나 파기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전에 없이 강경한 자세다. 20일 서울에 오는 클린턴대통령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의심할 만한 상당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북한이 억지를 쓰거나 변명한다고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하시설에 대한 방문조사가 ‘공화국에 대한 중상모독이자 횡포한 내정간섭’이라는 북한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또 만약 조사결과 지하핵시설이 아닌 ‘민수용’으로 확인된다면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주장대로 정말 민수용이라면 왜 국제사회에 떳떳이 공개하길 꺼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북한이 또다른 대가를 바라며 미국과의 협상용으로 이를 이용하려 한다면 큰 착각이다. 핵의혹을 흥정거리로 삼을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났다.

94년 제네바 핵합의의 목적은 북한의 핵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그같은 핵 투명성 보장을 다짐했고 그 약속에 따라 지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46억달러짜리 경수로공사가 진행중이다. 제네바 핵합의는 이처럼 북―미 양측이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가 이행을 담보한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지금 핵합의의 실천보다 오히려 핵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국제사회는 다시 북한의 핵합의 이행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제네바 핵합의가 깨진다면 북한에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 국제적 약속에 따라 핵투명성을 보장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북한은 영변 지하시설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계속 불투명한 태도로 신뢰를 떨어뜨린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참으로 외로운 신세가 될지 모른다. 인간사회의 기본은 믿음이다. 남북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당국간이든 민간차원이든 화해와 교류 협력은 무엇보다 서로간의 신의를 전제로 한다. 대외적으로 신뢰를 축적하는 일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북한당국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