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마구잡이 검문에 쐐기

동아일보 입력 1998-11-03 19:09수정 2009-09-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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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큰 집회가 있거나 탈주범 탈영병이라도 생기면 시민들은 무척 번거롭다. 여기저기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때로는 가방 속까지 보여줘야 한다. 합법적 검문에는 협조를 하는 것이 시민된 도리다. 그러나 마구잡이 검문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잦아 문제다. 경찰관들이 법을 제대로 알고 검문하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젊은 여성들을 붙잡고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면 직무수행인지 희롱인지조차 구분이 안될 정도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불심검문에 대해 아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검문이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만큼 인권침해 소지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한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경찰관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소속 성명 검문이유를 밝히고 질문할 수 있다. 경찰의 동행요구에 시민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경찰관서까지 함께 간 경우에는 6시간을 넘길 수 없게 돼 있다. 답변을 강요할 수 없으며 가족에게 연락과 변호인 선임이 가능함을 알려줘야 한다. 이런 검문수칙을 경찰이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최근 대학생들이 경찰의 불법적 검문행태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그런 점에서 관심을 끈다. 책을 사러 상경했다가 한총련집회와 관련, 불심검문을 받고 경찰서로 연행돼 18시간만에 풀려난 한 경북대생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 1백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비록 액수는 적지만 경찰의 불심검문 남용에 쐐기를 박았다는 의미가 있다. 당시 검문을 한 전경은 소속 성명을 밝히는 것부터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또 동행을 거부했는데도 연행돼 10시간 안팎씩 감금됐던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생 5명도 최근 배상심의회에 5백만원씩의 배상금을 신청했다.

검문 남용사례가 비단 이들 극소수 대학생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법에 의한 호소방법이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포기할 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들 대학생의 손해배상청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법적 권리의 침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의 발로라고 할 만하다. 시민들이 모두 자신의 권리를 간단히 포기한다면 경찰의 행태는 결코 개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과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찰은 경찰대로 반드시 법 테두리내에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인권의식을 한층 높여야 한다. 고문 등 가혹행위만이 인권문제가 아니다. 주변의 흔한 작은 인권문제부터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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