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換亂 기현상 저축률 상승

  • 입력 1998년 10월 28일 19시 13분


뉴욕의 국제금융시장 월스트리트에서는 일본인들을 ‘저축광’이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의 저축률은 국내총생산의 19%를 넘어 비율로 볼 때 미국의 4배에 달한다. 최근 일본의 한 금융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옆집에서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옆집의 ‘저축규모와 이재방법’이었다고 한다. 사회가 온통 저축경쟁에 나선 느낌이다.

▼반대로 미국의 저축률은 선진국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최근에는 국내총생산의 4%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씀씀이 규모는 더 커져 올 상반기부터는 소비증가율이 저축증가율을 앞서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미국경제는 견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일본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부를 저축규모와 연계해 해석하는 경제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저축률이 37.8%에 달했다고 한다. 환란 이후 소득이 줄었지만 지출을 더 많이 줄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IMF형 기현상이다. 산업자금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희소식이었지만 지금은 우울한 소리로 들린다. 국내 경제성장에서 소비의 기여도가 52.7%에 달한다는 점은 저축 못지 않게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개인이 소비를 기피하면 생산이 위축되고, 그래서 공장이 문을 닫으면 소득이 줄어 소비는 다시 감소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경제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마당에 개인적 ‘생활방위행동’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통계로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저축액은 6개월치 급여수준에 불과하다. 쓸래야 쓸 돈도 없다. 가진 사람들이 소비에 나서는 것도 사회분위기상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여건조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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