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사람·문화/미사리 「라이브거리」]

  • 입력 1998년 10월 15일 19시 43분


미사리의 분위기는 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20분 거리인 이곳에서는 유무명 가수들의 라이브공연이 밤새 펼쳐진다. 통기타의 음률과 가수들의 애잔한 목소리에 취해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고 가족들은 잃어버린 화음을 되찾는다. 미사리 ‘라이브 거리’에서.거리올림픽대로를 타고 천호대교에서 11㎞남짓 달리다보면 오른편에 줄지어선 카페들. 화려한 네온사인과 카페의 은은한 불빛. 건물에는 ‘가수 △△△ 출연’ 등의 큼직한 현수막이 걸려있다.30여 업소가 5.8㎞에 걸쳐 여유있는 간격으로 일렬로 서있다. 길건너 강뚝 아래로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찰랑거리는 물결.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고깃집 횟집이 들어찼던 이곳에 96년 후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기 시작. 라이브공연이 시작되고 심야 데이트코스로 자리잡으면서 앞다퉈 라이브카페들이 개업. ‘해적’의 지배인 김호용씨는 “지난해초만해도 5,6개였던 라이브카페가 지금은 20군데가 넘는다. 경기 양평과 퇴촌보다 가깝다는 이점 때문에 IMF의 영향도 비교적 덜하다”고 설명.사람오전11시쯤 ‘개시손님’은 30,40대 주부. 차 한대에 2,3명이 타고와 가벼운 점심식사나 커피를 즐긴다. 요즘에는 ‘실직자 동기생’끼리 와 소일하는 40대 남성도 부쩍 늘었다고.한 카페에서 만난 김원영씨(37·서울 서초구 방배동). “여유로운 주부들의 신선놀음으로 보지 말라. 강바람과 커피 한잔이 벅찬 생활로 돌아갈 힘을 찾아준다.”

라이브공연이 시작되는 오후7,8시경 30,40대가 아내와 아이를 승용차에 태우고 등장. 9시경부터 ‘주력군’인 20대중반∼30대초반 연인들이 속속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 ‘피크타임’인 10시를 고비로 손님의 ‘물갈이’가 이뤄진다. 여자친구와 온 정창수씨(27).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해야하는 연애의 ‘결정적 단계’에 라이브공연과 탁트인 야외의 마력이 도움을 준다”고 귀띔.새벽4∼6시까지 문을 여는 이 거리의 ‘마무리 손님’은 야근한 직장인과 유흥업소 관계자 그리고 시장 상인들.문화주연은 ‘포크송’. 라이브연주를 위해 대부분의 카페가 2층에 피아노 앰프 대형스크린이 설치된 무대를 갖추고 있다.80년대 중후반의 스타들과 무명가수들이 밤새 연주한다. 올 들어 박상민 유열 송창식 이광조 등 ‘스타급 가수’도 대거 등장. 윤시내 남궁옥분 하남석 등 TV에서 보기 힘든 가수들을 보며 ‘향수’에 젖을 수 있다. 신청곡도 대부분 80년대 포크송이나 팝송.미사리강변카페연합회 부회장인 ‘캬라반’의 김보선대표. “지난해까지 무명 가수들이 주로 공연했으나 올해 개업한 업소들이 ‘스타가수’를 불러 들이며 유명가수 영입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설명.

‘김학래 임미숙의 루브르’ ‘이치현의 싼타나’ ‘이종환의 쉘부르’ ‘하남석의 코박코’ ‘전인권’ 등 연예인의 소유나 동업, 또는 이름을 걸어둔 집이 많은 것도 특징.

라이브음악이 주인공이다보니 ‘음식문화’는 뒷전. 스파게티 1만∼1만2천, 돈까스 8천∼1만5천, 커피 4천∼6천원의 비싼 음식값에 걸맞는 맛을 기대하기 힘들다. 맛을 즐기려면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새벽1시 카페에서 만난 문희정씨(27·회사원)는 “칵테일이나 커피 한잔만 앞에 있어도 라이브음악과 강바람, 따스한 애인의 손길 때문에 가슴이 가득 채워진다”며 이 거리를 예찬.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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