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人權委에 거는 기대

  • 입력 1998년 9월 27일 19시 58분


법무부가 마련한 국민인권위원회 설립방안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하다. 유엔 권고안을 충실히 반영하려고 애썼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구체적 내용을 보더라도 그런 느낌이다. 새로 만들어질 인권법과 국민인권위원회라는 독립된 인권보호기구가 인권이 살아 숨쉬는 선진민주사회를 지향하는데 얼마나 기여하게 될지 기대와 관심이 모아진다.

법무부 시안에 따르면 인권위원회의 권한은 아주 강력하다. 인권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유치장 교도소 등을 시찰할 수 있고 관련 공무원, 심지어 검사까지 소환조사할 수 있다. 소환과 자료제출 요구에 불응하거나 시찰을 거부 방해하는 경우 또는 수감자가 진정서를 못쓰게 하는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이대로만 시행된다면 수용시설 인권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인권위가 다룰 수 있는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유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사기관의 각종 가혹행위, 도청 등 사생활침해, 성별 종교 출신지역 등에 따른 우대나 불이익, 성희롱 등이 망라돼 있다. 의문사 사건 등 과거사 청산기능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인권위 설립방안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우선 관계부처들은 인권위 활동이 정부기능을 위축시키거나 법질서를 해칠 소지가 있다는 반응인 반면 인권 및 시민단체들은 시정을 권고하는 권한만 있을 뿐 강제 수사권과 시정명령권이 없어 실효성이 적다고 주장한다. 인권위 구성권한이 법무부장관과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독립된 활동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인권단체의 주장에는 수긍할 만한 대목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권위활동은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한 수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권위에 수사권과 시정명령권까지 주는 데는 법 정비작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옥상옥(屋上屋)이 될 우려가 없지 않다. 특히 수사권을 부여할 경우 법체계상 검사의 지휘를 받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법무부는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에서 인권단체 등이 제기하는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기 바란다.

시정명령권이 없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권고를 정부기관이 거의 다 수용하고 있는 사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의 정당한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권단체나 여론의 압력을 통해 사실상 강제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런 방법이 민간단체의 활동을 활성화하고 인권운동의 순수성을 지키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인권위 구성에 대해서는 사법부와 변호사 여성 노동 인권단체, 그리고 학계 종교계 등에 널리 추천권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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