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문회 논란

  • 입력 1998년 8월 28일 19시 36분


국민회의가 10∼11월 중에 경제청문회와 방송청문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청문회를 통해 현 경제난국의 원인과 진상을 밝혀내고 방송청문회를 통해 과거정권의 방만했던 방송정책을 파헤치겠다는 것이다. 누구를 벌주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책실패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 위해서 청문회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도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과거 국정의 실패에 대해 국민에게 명시적으로 사과하거나 자기비판을 한 적이 없다. 나라를 이 지경에 빠뜨려놓은 정당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놓고 새 정부의 개혁에 사사건건 발목을 걸었다. 많은 국민이 청문회에 찬성하는 배경에는 그런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과거정권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꼭 청문회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도 없지 않다. 우선 청문회가 경제회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견해다. 그렇지 않아도 올 가을에는 경제가 더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실업은 날로 늘고 경기는 되살아날 기미가 없다. 국제경제 동향도 심상치 않다. 이 어려운 시기에 정치마저 온통 청문회 공방으로 날을 지샌다면 국정은 더 큰 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청문회가 진실규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지난 5공청문회와 한보청문회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지난 해의 환란(換亂)이 어떻게 초래됐는가는 이미 알만큼은 알고 있다. 당시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도 지금 진행중이다. 더 밝혀내야 할 것은 재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정책을 놓고 청문회를 하기로 하자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문회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나라가 앞으로 나가는 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권은 이번 청문회가 과거와 같은 ‘한풀이식’ 청문회는 안되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능력으로 볼 때 과거행태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청문회를 하려면 새 정부 집권 초에 끝맺었어야 옳았다. 이제 새삼스럽게 청문회를 들먹이는 것은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래가지고 청문회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끄럽기만 한 ‘정치청문회’는 실익이 없다. 특히 방송정책의 경우 비리 혐의가 있다면 사법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바람직할 수 있다. 정치권은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해 청문회개최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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