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정인/파행국회의 해법

  • 입력 1998년 8월 5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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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치의 본질은 사회계약에 있다.

사회계약의 핵심은 바로 사회 구성원들간에 정치적 삶의 규범과 원칙 절차에 대한 합의를 도모하고, 그 합의한 바를 법제화하고 집행하는 데 있다.

이러한 사회계약 하에서 입법부는 국민을 대표해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제정된 법률을 집행하며 사법부는 그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한다.

그러므로 법률 제정의 임무를 고려해 볼 때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입법부는 행정 사법부에 비해 우위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 당략 앞세운 구태여전 ▼

그러나 현재 우리 입법부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거듭되는 공전과 파행 등 후진성으로밖에는 규정지을 수 없다.

사실 초대 제헌국회에서 15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외 투쟁, 등원 거부, 단상 점거, 원구성 지연 등으로 점철된 역사를 상기해볼 때 의회 파행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15대 국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무엇인가 달라져야만 했다.

하나는 50년만의 정권교체를 통해 나타난 성숙된 민주주의의 시대적 소명이며 다른 하나는 6·25 이후 최대 국난으로 규정되는 경제위기의 극복이다.

지금 국회는 이 두 가지 시대적 요청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과거의 정치적 타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개혁 입법은 물론이거니와 민생현안 입법, 정치개혁 입법 등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실로 산적해 있다.

그뿐인가. 2백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연일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중소기업인,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위축되어 있는 소시민 모두가 고통분담에 앞장서고 있다.

이 고난의 행군에서 고통 분담을 솔선수범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유일한 예외가 되어 ‘무노동 유임금’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데서 우리는 배반의 분노를 느끼게 되고 무책임의 전형을 보게 된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국회 파행의 이유다. 이념 정강 정책 등 대승적 입법 사안으로 인해 국회가 공전되고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원숙을 위한 과도기적 고통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무총리 인준과 국회의장 인선 등을 둘러싼 당리당략 때문에 파행으로 치닫는 국회는 용납될 수 없다.

더구나 당내 결속을 위해 국민과 국회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수를 감행하는 여당, 위기국면에 절실히 요청되는 양보와 포용의 미덕을 저버리는 야당 모두가 문제다.

국회법 24조에 의거해 2백99명의 국회의원 전원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했다. 그러나 지금 이 선서를 제대로 지켜나가는 의원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법을 어기고 국민의 복리를 저해하며 개인의 이익과 당리당략을 국가이익에 우선하는 동시에 필요에 따라 양심에 위배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 아닌가.

지금은 치졸한 소모성 대립을 그쳐야 할 때다. 국민과 국회를 볼모로 삼는 저질의 정당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의회민주주의라는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국가 위기에 대한 초당적(超黨的) 공감대를 형성해 조합주의적 협력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다.

양당구도의 권력 역학에서 볼 때 여야간의 공존과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과 더불어 국회의 직무유기적 태만을 응징하고 교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요청된다.

▼ 양보와 포용의 미덕을 ▼

원 구성이 법정 시한내 이루어지지 않거나 국회 파행이 장기화 될 경우 대통령이 국회해산을 명령할 수 있는 헌법 개정도 고려해 봄직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는 국민이 가장 믿고 기댈 수 있어야 할 기관이다. 국회가 살아야 정치가 살고 정치가 살아야 경제가 회복되고 나라가 살 수 있다.

이제부터 이러한 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당리당략적 힘겨루기 정당구도에서 견제와 균형이 자리잡히고 양보와 포용의 미덕이 함께 하는 양당구도로 전환시켜 시대적 소명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국민의 국회로 다시 태어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문정인(연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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