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엄상익/「신창원 신드롬」의 허구

  • 입력 1998년 7월 23일 19시 27분


탈주범 신창원을 의적으로 미화하는 만화가 발간되고 PC통신에 그를 성원하는 글들이 뜨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의식이 건전하다면 결코 탈주범을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비틀린 의식이다. 우리는 과거 군림하려는 공권력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왔다. 그런 피해의식들의 잔재가 남아 신창원을 통해 위축되는 공권력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억압의 시대가 아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보면 착오가 생긴다. 탈주범은 잡혀야 한다. 그래야 법이 곧게 선다. 신창원은 강도범이다. 더구나 인명을 해쳤다. 그는 적법한 형의 집행중이었다. 법은 집행을 완료해야만 그 임무를 다한다.

신창원은 의적이 아니다. 80년대초에는 군부독재가 언론 등 사회 모든 분야를 간섭하고 통제했다. 그때 ‘우연히’ 권력층의 집을 턴게 조세형이었다. 억눌렸던 여론은 그를 의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독재정권에 간접적으로 항거하는 방법이자 대리만족의 수단이기도 했다. 사회적 상황이 그를 의적으로 만든 것이다.

최근 신창원의 탈주일기를 구해서 읽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의적이 아니라고 했다. 또 자신의 범죄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왜 탈주를 감행했을까. 그는 교도소 안의 인권유린을 참을 수 없어 탈주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교도관의 가학행위에 대해 온몸으로 절규하며 항의하고 있다. 어떤 교도관은 “너희들은 죽이지만 않으면 돼. 병신이 되더라도 우리에겐 책임이 없어”하며 가학행위를 했다고 했다. 그는 가학교도관의 희열하는 표정이 증오스러웠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 교도관들의 얘기는 어떤가. 필자는 얼마 전 한 교도소 간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은 자기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했다. 재소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재소자와 교도관 사이에서 감정대립이 일어나고 그 끝은 극한 대립일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사실 여부는 신창원이 잡힌 다음에 따져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교도소 안에서 인권유린이 있었다 하더라도 탈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신창원은 자수해서 적법절차에 따라 그 형의 집행을 마쳐야 한다. 동시에 가혹행위를 해 그가 한을 품게 한 교도관이 혹시 있다면 그도 엄중하게 조사해 처벌해야 마땅하다.

나는 며칠전 조세형을 만났다. 그는 “신창원의 아픔을 그대로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가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면서 “제가 만약 그를 만났다면 좁은 감옥의 공간 안에서도 참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줄텐데…”하고 걱정했다. 교도소는 더이상 탈주범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법의 여신은 저울과 칼을 들었다. 정확히 재서 칼질을 하라는 뜻이다. 행형법은 집행기관의 저울이다. 그것이 그저 보이기 위한 장식품이어서는 안된다. 행형법 조문 하나하나가 살아서 움직일 때 더이상 탈주범도, 병든 가치관에 의해 급조된 엉터리 영웅도 없어질 것이다.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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