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병무청탁비리 117명 뿐일까?

  • 입력 1998년 7월 23일 19시 27분


병무청탁 비리를 수사해 온 검찰이 기소한 1백17명의 명단을 보면 사회지도층에서부터 포장마차 주인까지 각계각층이 망라돼 있다. 국민의 의무를 경시하는 풍조가 국가기강을 무너뜨릴 지경이어서 매우 개탄스럽다. 자식들에게 병역의무를 기피하게 하거나 군에 가더라도 남보다 편하게 때우게 하려고 뇌물청탁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국민위화감이나 부추기고 사회정의를 왜곡시키는 반사회적 이기주의자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부모가 유력층이든 서민이든 상관없이 군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건강한 국민2세의 기상이다. 민주적 공동체였던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정치토의장은 전투에 참가한 시민들만이 발언권을 가지는 무대였다. 국민의무 중에서도 신성하다는 병역을 기피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다면 민주정치 토대가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도 병무비리는 차제에 발본색원돼야 한다.

당초 알려진대로라면 병무청탁자 4백38명중 현역 군간부가 1백33명, 검찰이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한 민간인은 1백85명이었다. 이 민간인 1백85명중 기소되지 않은 나머지 68명은 과연 면죄부를 주어도 괜찮을 만한 경우인지 미심쩍다. 전국회의원, 현직 부장판사, 지방 언론사의 전무 등이 금품을 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무혐의처리됐지만 제대로 조사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병무비리 사건의 주범 원용수(元龍洙)준위가보관해온병무청탁자 명단은 이밖에도 대학노트로 2, 3권에 이르는 규모였다. 검찰은 이 대학노트 명단에 대해서는 대부분 금품수수가 아닌 단순 청탁이어서 사법처리하기엔 사안이 가볍다는 이유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준위가 육군 모병연락관으로 10여년간 일한 점을 감안하면 그간 그를 통해 이루어진 ‘검은 병역 거래’가 3천∼4천건에 이를 것으로 검찰은 추산했었다.

부모가 자식의 편한 군대생활을 위해 수백만원씩 뇌물을 바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자식사랑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돈으로 병역을 사고 팔아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현역(無錢現役)’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라면 사회정의와 국가기강은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은 실제 사회생활에서 응분의 불이익을 받도록 병역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주들은 사원들에게 군복무기간 만큼 호봉을 높여주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수용하기 바란다. 국무회의에서조차 군 복무자 우대가 성차별이라는 주장이 일부 나왔다니 의아스럽다. 군 복무기간중 조직원 생활을 익히는 것만 해도 직장인으로 그만큼 더 대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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