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들러리로는 안된다

  • 입력 1998년 7월 15일 19시 31분


우여곡절끝에 어렵사리 출범했던 2기 노사정(勞使政)위원회가 한달 남짓만에 암초에 부딪쳤다. 참여 주체의 하나인 노동계가 10일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하고 산업현장을 벗어나 잇단 대규모 집회와 연대파업이라는 강경투쟁에 나서고 있다.

노동계와 정부의 유일한 대화통로인 노사정위는 사실상 그 기능이 정지됐다. 이제는 노동계의 장외투쟁과 정부의 강경대처라는 힘겨루기식 갈등과 대립의 긴장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같은 상황이 어떤 새로운 위기를 부를 것인가. 당장 경제개혁이 차질을 빚고 외자유치가 어려워질 것이다. 생산활동의 마비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이만저만 엄청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정치 사회적 혼란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위기극복과 경제회생은 요원해 진다.

노동계는 만의 하나 이를 지렛대로 이용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노사정위에의 복귀나 장외투쟁을 내세워 집단이기주의적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들거나 기선을 잡기 위한 압박작전을 편다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노동계의 노사정위 불참선언과 파업은 한마디로 잘못된 선택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현 시점에서의 파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강경투쟁이 경제위기를 심화시켜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면 근로자의 생존권 역시 보장받을 수 없다.

기업과 은행의 구조조정, 공기업 개혁은 더이상 머뭇거릴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그같은 구조조정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같은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사정위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협약기구로 출발했다. 그 밑바탕에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깔려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영미(英美)식의 노동배제적이고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아닌 네덜란드 사회경제협의회(SER)가 추진했던 사회적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방식을 선택한 것도 공동체의 핵을 이루는 일정한 정치 사회 규범적 질서 위에서의 시장의 작동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역사상 초유의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그리고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과 협력을 전제로 한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98년 ‘서울 협약’은 노사정 협약의 모델이자 전형인 스웨덴 살트요바덴협약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체계성과 진취성을 갖는다는 평가다.

노사정위 각 주체는 1기 노사정 협약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거나 훼손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2기 노사정위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노사정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 철학과 운영의 중심에 자리해야 한다. 그리하여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체이자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내는 국민적 합의 형성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경제개혁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노사정위의 위상강화와 제도적 안정성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노사정위가 노사양측의 완충역할이나 하는 ‘들러리’ 또는 정책추진과정에서 야기된 문제들을 걸러내는 ‘하수처리장’쯤으로 전락해서는 난파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공동체의 파열로 이어지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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