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광수/클린턴 방중과 주룽지 中총리

  • 입력 1998년 6월 15일 19시 53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25일부터 7월3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89년 중국 톈안(天安)문사건 이후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인 클린턴대통령의 방중은 아시아 경제위기,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에 따른 서남아시아의 긴장고조, 엔화가치의 폭락, 중국 위안(元)화 평가절하 전망 등 아시아가 요동치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져 주목된다.

현재의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미래의 최강예상국인 중국의 정상이 한 세기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만나는 셈이다.

이번 클린턴대통령의 방중에서 주요 호스트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주룽지(朱鎔基)총리의 행보가 관심을 끈다. 현재 ‘개혁 중국호’를 이끌고 있는 조타수는 올 3월 선임된 주총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통화위기 속에서 특히 돋보이는 중국경제의 저력의 이면에 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접대 연회 회의축소 등 공직자의 대(對)국민 봉사자세를 강조해 신선한 충격을 준 그는 한 마디로 신념의 경제전문가다.

그는 취임 직후 ‘작은 정부’와 ‘관료조직의 혁신적 수술’을 선언, 올해 안에 중앙부처 공무원의 절반 감축과 국유기업의 전례없는 과감한 개혁을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인기와는 담을 쌓고 경제정책을 추진해온 탓에 적이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던 그가 총리가 된 뒤 모두들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90년대 초 당시 부총리였던 주룽지는 인민일보에 경제개혁에 관한 장문의 글을 실었다.

그는 “개혁이 아니면 멸망 뿐”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자후를 언급한 뒤 놀랍게도 “동료 장관들의 저항이 개혁추진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사회주의체제에 길들여져 있는 관료들은 마지 못해 겉은 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속내로는 무너져 내리는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질타였다.

중국은 94년부터 각 분야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긴축정책 및 종합적 시장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관료사회와 학계의 반발은 엄청났다.

현상적이고 일시적인 부작용을 놓고 “이대로 가면 악성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다” “환율을 지나치게 저평가했다” “국유기업은 희생양인가” 등 총체적인 저항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룽지는 중국인민은행총재 다이샹룽(戴相龍)과 함께 통화의 고삐를 움켜쥐고 외롭게 버텨나갔다.

아홉번에 걸친 암살시도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은 최근 6년간 연평균 4백억달러가 넘는 외자유치와 평균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또 96, 97년 연 2∼3%선의 안정된 인플레를 기록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경제연착륙에 성공했다.

이같은 경제안정이 최근의 외환위기에 든든한 방호벽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무역흑자 4백억달러, 외환보유고 1천4백억달러 등은 부산물에 속한다.

그의 진면목은 외환위기 대처과정에서도 잘 나타났다. 그는 몇해 전부터 ‘과다보유’라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체제안보를 위한 것”이라며 외환보유고를 꾸준히 늘렸다. 곧 귀속될 홍콩의 장래가 금융안정에 달려있음을 내다본 것이다.

홍콩귀속 직전인 지난해 5월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홍콩달러에 손대자 즉각 제임스 루빈 미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이 예치한 미 재무부채권(TB)을 팔아치우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주룽지였다.

21세기 중화경제권 부상의 계기가 될 홍콩귀속 직후인 지난해 8월 통화위기의 회오리가 홍콩에 상륙하자 홍콩당국이 미 달러에 연동돼 있는 홍콩달러의 안정에 전력을 집중, 외국 금융자본의 탈출을 막은 것을 보면 주총리의 예견력은 탁월했다.

홍콩에 진출한 우리 금융기관들은 지각변동을 모른 채 위험한 돈놀이에 코를 박고 있을 때었다.

주총리는 3월초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논의한 ‘한국의 자유관광대상지역 선정문제’를 한달만에 전격 처리할 만큼 결단이 빠른 지도자다.

그는 이미 과학기술 교육 경제의 3자결합인 ‘과교흥국(科敎興國)’을 국가전략으로 내걸었다.

그가 클린턴대통령과 빚어낼 ‘작품’은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한광수(인천대교수·중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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