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 칼럼]퇴장하는 방식

  • 입력 1998년 6월 12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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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2년 전 우리나라에 왔을 때였다. 70세였던 그는 나이에 화제가 미치자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해외연주를 포함해 1년에 1백회의 연주를 소화해낸다고 건강을 과시했다. 그는 2000년까지 연주 일정이 잡혀 있다고 소개하면서 자기가 사는 곳은 ‘비행기 속’이라고 농을 던졌다.

며칠 전 올해 60세인 서울대 천문학과의 이시우(李時雨)교수가 정년을 5년이나 남겨놓고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그 퇴장(退場)의 변이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교수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연과학의 발전속도를 따라잡기가 힘에 부쳐 후학들을 위해 강단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두 경우 다 깊은 감동을 줬다. 고령을 무색케 하는 마에스트로의 예술을 향한 정열에 고개가 수그려졌고 평생을 학문에 바친 ‘노교수’의 제자 사랑이 보는 사람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휴식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집념, 제도적으로 보장된 노년의 권위와 안일을 버리고 담담하게 퇴장하는 학자의 겸양이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세속(世俗)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인’ 로스트로포비치의 경우보다 ‘제도인(制度人)’ 이교수의 경우가 주는 감동이 더 크게 다가온다. 교수의 본령은 연구다. 이교수가 연구를 핑계로 강단을 떠나기로 한 것은 안정된 연구여건을 잡지 못한 제자들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보이지만 그 결단이 설사 나태나 능력부족 때문이라고 해도 그 나태를 ‘동의받지 못한 권위’로 수호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일부 교수들에게 던지는 경고는 커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현재 전국의 대학강사는 5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학문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뜻을 세운 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가정 하나 제대로 꾸려나가기 어려운 ‘생활전선의 낙제생’이 돼 있다. 돈 주고 교수자리 산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낙담하고 상심하면서 노조(勞組)까지 만들어 대학에 대고 교수 채용을 늘리라고 요구하지만 메아리가 없다.

경우가 다르다고 할지 모르나 초중고등학교 노령교사문제도 그렇다. 올해 초 교사정년을 현행 65세에서 61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려다 교사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일단 유보시킨 적이 있는 교육부는 그 뒤에도 초임교사 계약제, 교사 연봉제, 55세 이상 교사 급여동결 등 교직사회 개혁방안을 조심조심 내비치고 있으나 교육계의 동의를 받아내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60세 이상 교사는 2만1천4백여명으로 전체교사의 6.3%에 이른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초임교사 연봉의 2.5배 정도다. 60세 이상 교사 1명 퇴직으로 2명 이상의 초임교사 채용이 가능하다는 단순계산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대학을 졸업한 중고등학교 교사자격 보유자 약 2만2천명 중 실제 교사 임용자는 17%에 불과했다. 그나마 임용자 대부분은 사범대 졸업자들이었다. 구직난시대에 일반대 교직과목 이수자들의 교직진출 길은 막혀 있는 셈이다.

경륜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교직의 특수성으로 보아 정년단축보다는 명예퇴직제 확대나 교사평가제가 대안이라는 교육계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교육환경과 교과과목은 젊고 의욕적인 교사들도 따라잡기 벅찰 만큼 새로워지고 있다. 아이들도 10년 단위로 세대차가 난다고 할 만큼 변하고 있다. 다른 공무원 정년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20대 실업자의 양산문제도 있다.

교직은 성직이지만 교직사회는 성역일 수 없다. 그렇다면 서울대 이시우교수의 퇴장방식이 초중고교 교직사회에 던지는 암시는 과연 없는 것일까.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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