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삶의 터전 ①]임수길/『흙의 건강이 국가흥망좌우』

  • 입력 1998년 6월 8일 07시 33분


《흙 산림 미생물 등 자연자원은 인간에게 경제적 이득만 주는게 아니다.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의 환경적 문화적 정서적 이익을 주고 있다. 그래서 자연자원은 인간의 삶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바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인간은 자연자원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짜내기 위해 그것을 파괴하고 오염시켜 왔다. 동아일보는 제26회 세계환경의 날(5일)을 계기로 고려대 자연환경보전연구소(소장 김진수교수)와 공동으로 ‘환경―우리 삶의 터전’시리즈를 6회에 걸쳐 연재, 환경 되살리기운동을 펼친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 한마디로 토양이 인간에게 어느 것으로도 대용할 수 없는 단 하나밖에 없는 값지고 귀중한 유산임을 알수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흙의 소중함을 잊고 그에 대한 고마움은 커녕 오히려 발아래에서 먼지나 진흙탕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취급해 왔다.

지구가 지름 10㎝ 정도인 사과라면 가장 바깥쪽에 위치하는 흙의 두께는 사과껍질의 반짝거리는 왁스층보다도 더 얇다. 이렇게 얇은 토양층은 생물이 살고있지 않는 다른 우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원이다.

흙은 지구라는 별의 생명체에게 다양한 형태로 생활터전을 제공한다. 55억 인구의 먹을거리가 되는 농림축산물을 생산함과 동시에 의식주에 필요한 거의 모든 종류의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또 토양은 대기권 수권 생물권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된 자연계 구성성분으로서 독특하고 다양한 정화기능을 발휘하여 건전한 자연생태계를 유지,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인류역사를 보면 흙의 생산력이 문명의 성쇠를 결정하여 왔다. 황하문명이 비롯된 황토, 이집트 문명의 나일 삼각주의 흑색토양, 메소포타미아문명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충적토양은 모두 비옥한 흙들이었다. 그러나 지력(地力)의 쇠퇴는 그 위에 터잡은 문명의 종말을 불러왔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지금의 중동 사막지대로 바뀌는 놀라운 변화를 맞은 것이다. 흙의 건강이 바로 국가와 문명의 흥망을 좌우함을 역사는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암석 풍화물, 분해 유기물, 토양생물이 섞여 있는 부드럽고 작은 알갱이들과 이들 사이의 작은 공간에 들어있는 물과 공기를 일컬어 흙이라고 한다.

식물뿌리는 물론이지만 단지 1g의 흙에도 수억마리의 세균과 곰팡이가 살고 있다.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페니실린은 너무 잘 알려진 토양미생물의 산물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부가가치(㎏당 2백30달러) 상품으로 개발한 세파계 항생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는 유기물 함량이 적으며 산성인 사질토가 많은데 이는 토양의 재료인 암석의 55% 이상이 화강암과 화강편마암 계통에서 유래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풍화작용에 강하고 규산(SiO2)함량이 높아 알이 굵은 사질산성토양(砂質酸性土壤)을 만들어 양분 및 수분 보유력과 환경오염물질 정화력이 작다(표1). 더욱이 연중 5개월 미만인 식물생육일수와 여름철의 높은 온도로 토양중의 유기물 함량을 증가시키기 어려워 사질토양의 약한 체질을 개선시키기도 어렵다. 이렇듯 우리 토양은 생산력과 환경정화능력이 높지 않은 허약 체질이기 때문에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중금속 독성유기화합물 유류 농약 비닐 등 토양오염물질의 급증은 가뜩이나 허약한 우리 토양을 안쓰럽게 한다. 오염토양을 복원하는 생물 물리 화학적 방법은 많지만 식물로 오염물질을 제거, 분해, 고정시켜 그 해를 줄여서 흙 본연의 기능을 살려내는 ‘식물을 이용한 오염토양 복원기술(Phytoremediation)’이 최근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투자자본이 적고 인건비가 높으며 산악이 많은 우리 나라에 적합한 신기술이다. 본인의 연구에 의하면 쑥 달맞이꽃 등의 자생식물은 중금속에 내성도 있고 불모지에서도 잘 살아남기 때문에 오염으로 황폐화된 지역의 초기 생태복원에 효용성이 있고(표2)자작나무 오리나무 포플러 등도 이용방법만 확립되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생명이 깃들이지못하는흙은더이상흙이아니며 ‘살아 숨쉬는 흙’이라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 어느 민족보다도 흙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명제이다.

<임수길 교수>

▼약력 △고려대 응용생명환경화학과 졸업 △하와이대 농학박사△고려대 자연자원대학 학장, 자연자원대학원 원장 △환경부 중앙환경보전 자문위원, 토양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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