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반환앞둔 「아리랑」

  • 입력 1998년 6월 1일 07시 29분


기록상 한국인이 직접 만든 영화는 3·1운동의 여진이 계속되던 1919년 10월27일 선보인 김도산(金陶山)감독의 ‘의리적구투(義理的仇鬪)’가 그 시작이다. 계모와 주인공의 불화를 다룬, 연극 중간 중간에 막이 내려와 서울의 풍경을 활동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사진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역시 장안의 화제가 됐다.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전해지지 않아 당시 신문에서 기록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영화뿐만 아니다. 해방전 영화사는 일본에서 복사해 온 친일색채의 어용영화 몇편만 남아 있어 ‘구전(口傳)영화사’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말 러시아 국립영화보관소에서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아낸 37년작 ‘심청전’은 현존하는 유일한 민족극영화였기 때문에 영화인들조차 깜짝 놀랐다.

▼한 일본인 수집가가 일제시대 한국영화의 상징적 작품 ‘아리랑’을 우리 정부가 요구하면 반환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리랑’은 3·1운동에 가담했다 일경의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된 주인공이 같은 동네의 일제 앞잡이를 응징하는 내용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민족영화 1호이다. 감독 주연을 맡은 나운규(羅雲奎)는 이 영화만으로도 불후의 영화인이 됐다.

▼한 영화인은 몇년전 파리 한국영화주간 행사때 한국영화 역사가 80년 가깝다고 자랑했다가 초기작을 상영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고 한편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변명하느라 혼났다고 한다. 문화의 보존을 소홀히 하는 나라라고 비웃었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의 반환은 물론 러시아에 있는 우리 영화들도 복사해와 ‘구전영화사’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웠으면 한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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