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권기안/「고속철」기술자의견 존중하라

  • 입력 1998년 5월 7일 20시 05분


4년전 어느책 서문을 통해 ‘경부고속철도를 착공한지 2년이 되었는데 아직 역사를 지상이냐 지하냐를 결정하지 못하고 책임도 지지않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주장을 해명하느라 고속철도공단 간부들이 본업을 뒤로 하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한탄한 바 있다. 그것이 6년이 지난 최근까지 재연된 것을 보며 기술자들을 믿고 힘을 주기보다 논쟁만 일삼는 우리의 정치 사회풍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판을 요약하면 설계도도 없이 정치적으로 졸속착공했다, 부실공사 투성이다,경제성이 없으니 중단해야겠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경부고속철도는 77년 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노선선정 수송수요판단 경제성 등 수없이 많은 검토를 거쳤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이 아니다.

졸속으로 잦은 설계 변경을 했다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상리터널의 노선변경을 들 수 있다. 터널 노선에 광산갱도가 근접해 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 터널의 지반은 경암지대여서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혹 걱정이 된다해도 그라우팅 처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자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니 돌아가야겠다는 흑백논리에 의해 노선변경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기투입된 공비(1백억원)가 허실되었고 더 큰 문제는 서울∼대전간 전체 공기를 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공사의 70%이상이 부실공사라고 한때 언론에서 호되게 질책을 받은 일이 있다. 미국의 전문기관에서 검사한 극히 일부 결과를 침소봉대하여 발표한데서 온 혼란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전체 조사 개소 중 몇개소만이 경미한 재시공으로 낙착됐고 대부분 강도에 전혀 영향을 주지않는 콘크리트 표면 화장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미국 검사 기관도 그렇게 인정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 뒷일을 생각해보자. 반대여론이 떠들썩하면서 공사는 1년여동안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1년간 공기가 지연된데 따른 직간접비, 금리 등은 3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얼마전 감사원은 작년에 17조6천억원이던 총공사비가 22조3천억원으로 늘어났을뿐만 아니라 채산성이 전혀 없으므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것이 어떻게 와전됐는지 언론에서는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처럼 비쳐졌고 감사원은 백지화 의견을 낸 적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늘어난 4조6천억원의 주요내용이 공단의 관리비 인건비, 개통후 30년까지의 차량 추가수요 등이라고 하는데 투자기관의 유지 관리비용까지 투자비에 계상해야하는지, 개통후 영업성과에 따른 추가 수요를 어느 시점까지 계산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경제성이 모자란다 해도 사회간접자본(SOC) 본래의 목적, 즉 경부축의 물류비용을 낮추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할지, 경부간의 교통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함으로써 국토 개발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지, 당장 기존 경부선의 수송용량이 한계에 이르러 물동량 증가에 속수무책인 현실을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이제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논란은 그만 접기로 하자. 타당성은 교통경제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고 건설시공은 기술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건설 주체를 하루속히 정비해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건설공단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종합산업인 고속철도건설을 통해 차량 기계 전기 통신 신호 토목 건축 등 많은 분야의 기술이 한단계 높아지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의 기술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밀어주자.

권기안<대한토목학회 철도분과위원·철도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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