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좌승희/中企자생력 키우려면…

  • 입력 1998년 4월 26일 20시 48분


우리나라는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생성된 재벌 중심의 불균형적 산업구조를 교정하기 위해 79년부터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육성시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각종 경제통계나 지표를 살펴봐도 중소기업부문이 획기적으로 성장해 우리 경제가 보다 더 균형된 산업구조로 바뀌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 고유업종제도 재고할때 ▼

왜 그럴까. 그동안의 중소기업 육성시책은 대기업에 의한 독과점적 시장구조 아래에서 중소기업 부문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시장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단지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보호막속에, 그것도 대기업의 독점력 앞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효과적이지도 못한 보호막속에 안주하도록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육성책이 시행될 당시 우리 경제구조는 이미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 수요 혹은 공급독점자로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과잉중복투자를 억제한다는 이름아래 도입된 진입규제, 업종전문화시책 등의 정책이 오히려 대기업의 독점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한 측면이 많다.

또한 일본식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화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되레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을 심화시키는 결과도 초래했다. 시장경쟁압력에 따른 대기업 중소기업간 협력의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계열관계가 만들어짐으로써 오히려 수요독점자에게 중소기업을 종속시켰다.

아무리 정부가 대기업에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독려하고 어음결제 기간의 단축과 나아가 현금결제를 독려한다 해도 대기업들이 수요독점자로 남아 있는 한 이에 부응할 유인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중소기업 부문이 활성화되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중소기업의 육성을 보호와 지원 중심으로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은 경제적으로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우선 규모의 경제가 작기 때문에 작은 기업으로 남아 있어야만 효율적인 기업을 의미할 수 있다. 한편 규모의 경제는 크지만 대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초기단계에 있는 기업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중소기업이 활성화하려면 중소기업 부문에 보다 건실한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진입과 퇴출은 물론 창업과정이 용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중소기업정책은 소위 재벌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우려 때문에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설정하여 영세자본가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소기업 부문의 활성화’ 보다도 ‘중소기업가 보호정책’으로 변질되었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경쟁을 이겨내고 선진화를 달성하려면 누구의 명령이나 규제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따른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협력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기업들간의 경쟁촉진이 필요하다. 대기업 업종에 대한 상호 진입규제가 기업활동에 제약이 되는 것은 물론 대기업들의 독점력을 보장해 주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중복투자억제를 위한 진입규제정책이 오히려 기업들의 선점적 진입행태를 조장함으로써 중복투자의 촉발요인이 되었음을 직시하고 이제 과감하게 진입을 자유화함으로써 대기업간 경쟁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 금융-창업지원 확충해야 ▼

이렇게 하여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공급 및 수요독점력을 완화시킴으로써 중소기업의 교섭력을 높여주고 역으로 대기업들도 중소기업과 협력하지 않고서는 높아지는 경쟁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자각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간 경쟁환경의 조성 없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자생적인 협력체제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소기업금융 확충과 창업지원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와 같은 진입규제는 점차 철폐,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이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데 기여할 것이다.

좌승희<한국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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