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낙연/진정한 정계개편

  • 입력 1998년 4월 15일 19시 45분


정계개편 논의가 분분하다. 대체로 어느 당에서 몇 명이 나와 어디로 간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러나 정계가 좀더 근본적으로 개편될 수는 없을 것인가. 여소야대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국가적 위기이자 대변혁기이기 때문에 진정한 정계개편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미국에서 진보적 민주당과 보수적 공화당의 양당체제가 확립된 계기는 1929년 대공황이었다. 일본에서 보수적 자민당과 혁신적 사회당을 주축으로 하는 다당체제가 등장한 것은 1945년 패전과 미국의 일본점령정책이 낳은 결과다.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위기가 정치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는 한국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가져와야 하는가.

대공황 이전에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노선구별이 분명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보수적이고 공화당이 오히려 대중적이던 시기도 있었다. ‘빨갱이 사냥’이 기승을 부린 1920년 뉴욕주 의회에서는 5명의 공화당의원이 사회당원으로 몰려 제명되기도 했다. 그후 공화당은 반(反)노동자 성향을 드러내 도시노동자들의 지지를 잃어 갔으나 그렇다고 민주당이 산업노동자들을 지지세력으로 확보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대공황에 대한 상이한 대응방식이 양당의 노선을 갈라 놓았다. 1928년 대통령선거에서 허버트 후버를 당선시킨 공화당은 대공황에 따른 실업자 구제와 경제회복에 연방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를 외면했다.

1932년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국민 각자의 용기와 의지’ ‘주정부와 지방의 구제책임’을 강조해 패배했다. 반대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후보로 내세워 이긴 민주당은 연방정부의 개입을 약속했고 그런 구상을 뉴딜(새로운 처방)이라고 불렀다.

1936년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뉴딜 지지를 전제하면서도 ‘자유기업’ ‘개인적 경쟁’ ‘기회균등’을 내걸었으나 민주당은 뉴딜의 강력한 추진을 공약해 압승했다.

패전은 일본사회를 보수와 혁신으로 거의 양분했다. 그러나 양측은 모두 분열됐다. 그 무렵에 미국의 대일(對日)정책이 선회했다. 소련팽창과 중국공산화에 자극받은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을 방파제로 삼으려 했고 그래서 일본점령정책의 목표를 ‘정치와 사회의 개혁’에서 ‘경제자립의 지원’으로 전환했다. 공직에서 추방했던 우익인사들의 정계복귀도 대대적으로 허용했다. 혁신세력은 이에 반발하며 사회당을 만들어 결집했다. 그러자 불안해진 보수세력도 자민당으로 단일화했다.

자민―사회 체제는 1955년부터 38년 동안 계속되다가 냉전종결 이후 변화에 휘말렸다. 자민당에서는 많은 의원이 이탈했다. 사회당은 사민당으로 간판을 바꿨다. 최근에는 양당의 중간세력이 신민주당으로 통합해 제2당이 됐다. 신민주당은 시장만능주의(자민)와 복지지상주의(사민)의 대립을 뛰어넘어 소비자와 납세자의 이익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당을 만들어도 이렇게 노선부터 천명하는 것이 선진국 정치다.

IMF체제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대응을 요구한다. 경제개혁이나 노동자대책을 놓고 어느 지역당은 찬성하고 어느 지역당은 반대하는 식이라면 세계가 웃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정당들이 보수와 개혁, 시장중시노선과 복지중시노선으로 나뉘어 논쟁하고 조정할 때가 됐다.

현실적으로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그렇게 가야 하고 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이 진정한 정계개편이다.

이낙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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