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정책 혼란스럽다

  • 입력 1998년 4월 8일 20시 11분


경제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가는 정책도 있다.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도 있고 오락가락하는 정책도 있다. 상호 조율없이 각 부처가 한건주의식 정책을 내놓다 보니 부처간 관할권 다툼이 벌어지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들도 많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재원마련이 막연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 실업정책과 구조조정간의 우선순위다. 정부도 양대 정책과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는 일단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을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정책조율을 시도하고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금융 및 산업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과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한 한국판 뉴딜정책이 실행과정에서 적잖은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금융정책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을 통한 재벌개혁을 내세우며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부채비율 조기감축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초 2002년으로 정했던 부채비율 축소일정을 갑자기 3년이나 앞당겼다.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잃은 대표적 사례다. 지주회사 설립허용 문제도 소관부처간 방침이 달라 경제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실업대책 재원마련을 위해 이자소득에 실업세를 부과하겠다는 노동부의 정책 건의를 재정경제부는 과세형평을 이유로 일축했다.

외자유치 업무를 놓고도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재경부 등이 저마다 다른 정책을 내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산자부는 1백만평 규모의 외국인투자자유지역 7개소 설치를, 건교부는 국제무역자유도시 건설을, 재경부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전면 개방정책을 제시했다. 또 원스톱 서비스체제 구축과 관련, 여러 부처가 소관 다툼을 벌였고 통화신용정책을 둘러싸고는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신경전을 펴고 있다. 정부정책이 이렇게 혼선을 빚어서는 낭비와 비효율을 부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시책이 일선에선 아예 실종돼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무역금융과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그렇고 실직자를 위한 공공근로사업도 첫날부터 겉돌고 있다는 보도다.

정책추진을 뒷받침할 재원마련 방안에 이르면 더욱 어안이 벙벙해진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각종 정책을 추진하려면 무려 60조원이 소요되는데 무슨 수로 이같은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인가. 정부는 보다 합리적인 정책 조율을 통해 우선순위를 가리고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온 정책들을 실현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여기에 정치논리나 부처이기주의가 끼여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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