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

  • 입력 1998년 2월 6일 08시 55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00〉 처녀 곁에 쭈그리고 있는 두 마리의 검은 암캐가 저의 두 언니라는 말을 듣고 저는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저를 경악케 한 것은 처녀의 다음 말이었습니다. “오, 인자하신 분, 저는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신의 애인이신 왕자님은 끝내 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그분은 이미 바다 밑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거든요.” 이 말을 들은 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처녀는 그러한 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두 마리의 암캐를 움켜잡은 채 높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저의 고향집 안 마당에 내려앉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처녀는 저를 고이 안아다 저의 침상 위에다 뉘었습니다. 처녀가 지극정성으로 저를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며칠 뒤 저는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운을 차리자 처녀는 말했습니다. “주인님, 솔로몬의 도장반지에 새겨진 모든 이름에 맹세코, 당신은 당신의 언니인 이 개들을 매일 삼백 대씩 매질을 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언니들에게 매질을? 그런 가혹한 짓을 하느니 나는 차라리 죽고 말겠어요. 게다가, 왕자님마저 잃어버린 이 마당에 나는 살맛도 잃어버렸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저를 달래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님, 만약 당신이 매일같이 삼백 대씩 이 개들에게 매질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죽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라는 게 뭐죠?” “당신이 사랑하는 왕자님의 영혼이 알라의 궁전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을 헤매게 되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왕자님은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을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는데, 그런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었으니, 당신의 두 언니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는 한 그분의 영혼은 알라의 품으로 돌아갈 수가 없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두 눈 가득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오, 왕자님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하기 위해서라면 시키는 대로 하지요.” 그제야 처녀는 활짝 날개를 펼치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습니다. 오, 충성된 자의 임금님, 그로부터 저는 마녀신과 한 약속대로 매일같이 삼백 대씩 언니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채찍질을 하면서도 저는 언니들이 가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언니들은 제가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묵묵히 저의 채찍을 받아들인답니다. 이것이 저의 신세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여주인은 입을 다물었고, 교주는 매우 감탄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두번째 여자, 즉 문지기 여자를 향해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 차례다. 그대는 어찌하여 온 몸에 채찍자국이 있는지 그 까닭에 대하여 말해보라.” 문지기 여자는 교주 앞으로 나섰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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