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안병욱/인생에서의 「가장 깊은 만남」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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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천하의 유일자(唯一者)다. 이 넓은 천지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다. 세상에 나의 생명처럼 소중하고 존귀한 것은 없다. 영어에서 ‘나’를 ‘아이’(I)라고 언제나 대문자로 쓰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온 천하를 다 주어도 나의 생명과 바꿀 수는 없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내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가치가 있으랴. 나의 생명 속에는 내 부모의 뼈와 살과 피와 혼이 숨쉬고 있다. 나의 존재 속에는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깊은 영(靈)이 깃들인다. 나의 목숨은 내 목숨인 동시에 내 부모의 목숨이요 내 조상의 목숨이요 내 민족의 목숨이요 천지자연의 목숨이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음과 같은 설화(說話)로 설명하고 있다. ▼ 「나」없는 우주는 무의미 ▼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際)한 망망대해의 밑바닥에 한쪽 눈이 먼 거북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거북은 1백만년에 한번씩 잠깐 바다의 표면에 떠올랐다가 다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1백만년 후에 다시 바다 표면에 떠올랐다. 이 망망대해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도는 한 조각의 나무판자가 있고 그 나무판자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마치 1백만년마다 한번씩 바다 위에 떠오르는 애꾸눈의 거북이 망망대해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떠도는 그 나무판자의 조그마한 구멍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맹구부목(盲龜浮木)의 이야기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먼저 운명의 신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고마워하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신의 은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나의 목숨은 이렇듯 위대한 목숨이다. 큰 뜻을 품고 큰 힘을 길러 큰 일을 하라고 하늘이 내게 주신 것이다. 대지인(大志人) 대력인(大力人) 대업인(大業人)이 되라고 부모가 나를 낳아주셨다. 우리는 먼저 생명의 존귀함을 알아야 한다. 나의 목숨은 사명(使命)이요 소명(召命)이다. 나는 심부름을 받고 태어난 목숨이다. 누구의 심부름을 받았는가. 하늘의 심부름, 하나님의 심부름, 민족의 심부름, 역사의 심부름을 받고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명감이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명인(使命人)이요 이렇게 생각하는 인생관을 사명적 인생관이라고 한다. ▼사명 자각은 새로운 태어남 ▼ 인간의 자각 중에서 가장 깊은 자각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기의 사명을 자각할 때 내 존재에서 큰 빛이 나고 강한 힘이 생기고 정신이 위대해지고 생활이 진지해지고 인격이 심화된다. 세상에 생명과 사명의 만남처럼 깊은 만남이 없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거듭날 수 있는 것이요 생명의 신생(新生)이요 존재의 혁명이다. 그러므로 스위스의 교육자 칼 힐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생애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라고. 아프리카 탐험의 대업을 성취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달성할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라고. 베드로가 갈릴리 호반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아난(阿難)이 베나레스의 숲속에서 석가를 만났을 때, 플라톤이 아테네 거리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났을 때, 안연(顔淵)이 곡부(曲阜)의 학당에서 공자(孔子)를 만났을 때 그들은 모두 위대한 사명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명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생명과 사명의 만남처럼 인생에서 깊은 만남이 또 어디 있으랴. 안병욱<숭실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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