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금융위기 러시아의 지혜

  • 입력 1997년 12월 12일 20시 17분


러시아는 경제수준으로만 보면 자본주의의 유치원생 쯤 된다. 이러한 러시아가 11일 선진 각국과 세계 경제전문가들의 찬탄을 받는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독일의 한 은행으로부터 긴급 차입을 교섭하던 20억달러의 도입을 보류하고 스위스 및 영국은행과 진행중이던 자금 도입협상도 중단키로 한 것. 러시아는 10월이후 40억∼50억 달러 가량의 외국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고 주가(모스크바타임스지수)마저 하루에 10∼15%포인트씩 하락, 금융위기에 대한 공포에 빠져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빌려주려는 곳만 있다면 한푼의 외화라도 더 들여오려 할 것이 당연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러시아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선택했다. 그 해답은 러시아정부가 외환위기에 대처한 과정에서 쉽게 발견된다. 동남아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금융구조가 취약한 러시아는 이 태풍권에서 홀로 안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나톨리 추바이스 경제담당제1부총리 등 경제팀은 10월초부터 세계은행 유럽개발은행은 물론 유럽계 대형 민간은행들과 직접 접촉, 외자 도입협상에 나섰다. 먼저 협상파트너들에게 현재의 산업구조와 금융실태 및 향후 정책방향 등을 상세하고 솔직하게 설명했다. 국제금융기관들이 지적한 세제개혁의 조기 시행을 약속하고 내년 예산안의 축소 조정에도 착수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보리스 옐친대통령도 직접 나서 헬무트 콜 독일총리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 등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국내문제의 경우 사사건건 뒷다리를 걸던 러시아의회(두마)도 예산안 축소심의를 쉽게 끝내는 등 협조했다. 이렇게 되자 외국 투자기관들의 신뢰가 쌓여갔다. 국제금융기관들의 지원약속이 잇따라 나오면서 러시아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았고 지난주부터는 부분적이나마 외국자본이 다시 유입되기 시작했다.이에 따라 러시아정부는 11일 『긴급 외자도입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우리가 경제후진국이라고 깔봤던 러시아도 이렇게 했다. 지혜를 짜내고 힘만 모으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반병희(모스크바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