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79)

  • 입력 1997년 10월 25일 22시 30분


그들의 그림자 〈7〉 『그냥 얘기를 들으신 게 아닌 것도 알아요, 저는』 『그건 또 무슨 얘긴데요?』 『처음엔 그걸 태하씨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요. 그러다가 서영씨가 은백으로 내려갈 때 태하씨가 그걸 서영씨에게 주었다는 얘기도 들은 걸요』 『서영씨가 그런 이야기도 해요?』 『예』 『그렇게 친해졌어요?』 『그럼요. 은백에 있는 서영씨 집에 갔을 때 그 헬멧이 서영씨 책상 한쪽 위에 있었어요. 아느냐고 물어 안다고 대답했고요. 그랬더니 서영씨가 그걸 두 손으로 들어 제 머리에 씌워 주었어요』 『그랬군요』 『그러니까 괜히 눈물이 났어요. 제가 눈물을 흘리니까 서영씨도 따라 눈물을 흘리고요. 아마 서영씨와의 마음속의 화해는 그렇게 이루어졌을 거예요. 서영씨가 그랬어요. 우리에겐 같은 아픔일 거라고… 방법은 달랐지만…』 그 사이 음식이 나오고, 그가 그녀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자 그녀도 두 손으로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형하고 함께 술을 마신 적 있어요?』 『예. 형님 자취하는 방을 찾아갔을 때… 제가 떼를 썼어요.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계절인데 그때 거리를 방황하다가 비가 내리는 밤에 거길 찾아갔어요. 그리고 형님한테 술을 마시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다고 말했고…』 『한잔해요. 그 동생하고』 그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쳤다. 그는 반잔쯤을 비웠고, 그녀는 입술만 축이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식사가 거의 끝날 때 그녀는 그가 따라주는 술을 비웠다. 그녀의 눈가로 엷게 꽃그림자가 피어올랐다. 이제까지 본 그녀의 모습 중 가장 여자다운 모습으로 그녀가 한때 운명처럼 사랑했던 남자의 동생 앞에 앉아 있었다. 『우리 형을 정말 사랑했나요?』 다시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그가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얘기할게요』 그가 탁자 건너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괜찮아요. 어떤 얘기도… 아까 전화를 하셨을 때 어떤 얘긴지는 모르지만 저한테 하기 어려운 얘기가 있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전화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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