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5〉
어전을 물러난 마부와 하인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며 앉아 있었다. 그때 당사자인 마루프가 하렘에서 나왔다.
『대체 왜들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 있느냐?』
마부와 하인들의 표정이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눈치챈 마루프가 물었다. 그러자 일동은 마루프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에 입맞추었다. 그리고는 사건의 전말, 즉 일천 필의 말과 오백명의 백인노예들이 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마루프는 슬퍼하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걸 가지고 신경을 쓰다니? 몇 푼어치나 된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돌아들 가거라』
마부와 하인들은 그제서야 안심이 된 얼굴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모습을 엿보고 있었던 왕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대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자는 대체 어떻게 된 사람일까? 일천 필의 말과 오백명의 노예가 없어졌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군.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을 거야』
왕의 이 말에 대신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부마께서 하시는 일 중에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투성이라고요』
잠시 후 마루프는 왕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알현실을 찾아왔고 그러한 그를 향하여 왕은 말했다.
『여보게 사위,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이제 짐도 도착했으니 오늘은 만사를 제쳐두고 자네와 나 그리고 대신, 이렇게 셋이서 화원으로 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로 함세』
왕이 우정에 찬 제의를 해오자 마루프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실은 저도 아버님을 모시고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싶어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사람은 화원으로 나갔다.
화원에는 온갖 과일이 가지가 휠 만큼 열려 있고,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고 있었다. 화원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은 더없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세 사람은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세상 이야기에 흥을 돋우고 있었다. 입담이 좋은 대신은 세상에 희한한 이야기며, 재미있는 익살이며, 마음을 들뜨게하는 모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마루프는 그의 이야기에 정신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윽고 저녁 식사 때가 되었으므로 진수성찬의 식탁이 차려지고, 온갖 술병들이 놓여졌다. 세 사람은 배불리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손을 씻은 뒤 대신은 잔이 넘칠만큼 술을 따라 우선 왕에게 권하였다. 그리고는 다른 술잔에 가득 술을 따라 이번에는 마루프에게 내밀며 말했다.
『공손히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술잔이오니 받아주소서』
그러자 마루프가 물었다.
『대신, 이건 무슨 술이오?』
『이건 오랫동안 집에 들어앉혀 두었던 과년한 숫처녀라고 하는 것인데 오랫동안 술통에서 숙성시켜 마음에 기쁨을 주는 술이지요』
그러자 마루프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대신은 입담도 좋소』
<글:하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