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제화시대의 국적법

동아일보 입력 1997-09-20 21:22수정 2009-09-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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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국적법 개정안은 부계(父系)혈통주의를 부모 양계(兩系)혈통주의로 바꾸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요건과 범위를 정하는 국적법은 48년 제정 이후 3차례 손질을 했으나 기본골격이 그대로 유지돼 지나치게 폐쇄적이어서 국제화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행 국적법은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해 여성의 독자적인 국적 선택권을 제약함으로써 남녀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견해가 여성계와 법조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국제인권규약 등 한국이 가입한 여러 국제협약과도 배치된다. 국제 인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제결혼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취학 의료보험수혜 등 기본권보호 측면에서도 국적법 개정은 불가피하다. 아직도 우리 사회 저변에는 가부장적 전통과 함께 단일민족으로서의 유구한 문화를 소중히 가꾸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여론이 만만치 않다. 92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마련됐다가 국회에 상정하지 못하고 무산된 전례가 있다. 유림이 대표하는 반대논지는 양계혈통주의가 가부장적 유교질서의 전통을 파괴하고 외국 남성의 자녀를 한국 국민으로 인정함으로써 단일민족의 순수성을 잃고 혼혈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화 시대를 헤쳐가는데 장애가 되는 낡은 제도나 법률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다만 법률안 심의과정에서 전통문화를 숭상하는 견해를 충분히 경청하고 검토하는 배려는 있어야 한다. 대통령선거에 쫓기는 정기국회이지만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각계 의견을 널리 들어 국제화 조류에 맞는 방향으로 국적법을 손질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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